감상문 한 줄 정리
언어로 맺어진 관계가 일어나 걸으려는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언어의 정원 감상문
비 오는 날의 일탈
통학에 전철을 이용하는 아키즈키 타카오는 고등학생이 되어 지금까지는 몰랐던 어떠한 사실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과 함께 이용하는 전철에서 타인의 우산으로 인하여 젖는 교복의 감각이라거나 등으로 느껴지는 누군가의 체온, 약간은 불쾌한 에어컨의 바람 등 이러한 사실들은 온통 부정적일 뿐이었는데 그렇게 가라앉은 내면을 환기하려 그는 언제나 비를 기다렸다. 어렸을 적 보고 좋아했던 높은 하늘과 그 하늘이 데려오는 비를 느낄 때 비로소 편안한 감각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것에 집중할 수 있었고 오전 수업을 빼먹은 채 정자에서 자신만의 취미를 즐기는 그의 색다른 일상은 분명 비 오는 날의 정취처럼 차분함을 만끽하는 즐거움이었다.
6월의 어느 날 타카오는 여느 때처럼 비를 핑계로 전철에서 내려 학교 대신 공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비를 피해 찾은 정자에서 구두 장인이 되겠다는 소중한 꿈에 다가가려 구두 스케치에 열중하는데 문득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여성을 발견하여 조금은 신경이 쓰였으나 이내 자신의 취미를 계속한다.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그녀에게 계속 눈길이 끌리다 결국 집중하지 못한 타카오는 스케치를 하던 중 지우개를 놓쳐버렸고 이를 주워준 상대방을 바라보며 서로가 안면이 있는지 질문하지만 타카오의 교복을 지그시 응시하던 상대방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구절을 말한 뒤 자리를 떠난다.
투정을 부리는 어머니와 독립을 준비하는 형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한 타카오에게 의미를 알 수 없는 구절은 그의 머릿속을 더욱 어지럽혔다. 며칠이 지나 시작된 장마의 영향으로 비 핑계를 댈 수 있게 된 타카오는 또다시 공원의 정자로 향해 지난번처럼 또 술을 마시는 그녀와 각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서로의 사정은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이 조용히 자신을 위해 즐기던 시간은 상대방의 질문으로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되는데 학교가 쉬는 날이냐는 질문에 타카오는 회사가 쉬는 날이냐고 응수하였고 그녀는 그저 또 나가지 않았을 뿐이라고 답한다. 그 대답을 시작으로 조금은 풀린 분위기에서 두 사람은 별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오전 시간을 보냈고 자신만의 철칙을 지키기 위해 등교하려는 타카오를 지켜본 상대방은 만약 비가 온다면 또 만날 수 있겠다고 말하며 아쉬움을 남긴다.
그리고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자 두 사람은 비를 핑계로 그들을 위해 준비된 쉼터에서 각자 추구하는 바를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타카오는 자신이 꿈꾸는 구두 장인이라는 목표에 대해 고백한다. 타카오에게는 이 비밀스러운 시간이 해방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기에 주변 누구에게도 진지하게 말하지 않은 진로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해방의 순간을 기다리며 비가 오기를 바란다.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오히려 친근함이 생겼을 즈음 그날도 비를 핑계로 직장에 나가지 않은 그녀 역시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어떠한 경위로 인해 일을 쉬면서 마음을 추스르던 그녀는 무엇인가 극심한 고통에 휩싸인 과거로 술과 초콜릿 외에는 느껴지지 않았던 미각 상실에 더불어 의지하고자 하였던 남자친구마저도 그녀를 믿지 않아 외로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실 뿐이었고 괴로움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간단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기는 끝없는 거짓말은 그녀의 쓸쓸함을 더욱 키우며 다시 일어설 희망을 짓누르는 족쇄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비가 맺어준 인연은 쓸쓸함의 상처를 메우는 계기가 되었다. 타카오와 함께 식사를 나누고 대화를 이어가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조금씩 회복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기에 비는 그녀로서도 바라는 일이었다.
비록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이지만 마음 편히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있다는 사실이 직면한 괴로움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마음을 다잡도록 용기를 북돋웠고 이로 인해 여느 날처럼 타카오와 만나 대화하다가 그가 구상하는 구두의 모델을 부탁하자 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장마가 물러가고 맑은 날만 이어지면서 그들이 만날 구실은 사라졌고 타카오는 전문학교 진학과 자신의 꿈을 위해 매진할 뿐이었다. 치열하게 보낸 여름방학이 지나고 9월이 되자 개학한 학교에서 타카오는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끼는데 잠시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순간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동안 타카오의 비밀스러운 일탈을 함께 나누었던 상대방 유키노 유카리는 고전 문학을 담당하는 교사로 타카오가 다니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이었으나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일부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까지 나서 그녀를 괴롭히는 현실에 고통받아 휴직 중인 피해자였다. 그녀가 피해자라고 말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이 일을 키우기 싫다는 학교 측의 일방적인 강압에 묵살되었으며 그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타카오는 퇴직 후 학교를 떠나는 유카리를 바라보다 방과 후 사건의 주모자인 선배들을 찾아가서 들은 그녀를 향한 조롱에 마치 내면의 무엇인가가 발악하는 듯 이성을 잃고 덤벼든다. 다음날 비가 오지 않음에도 공원에서 비를 기다리는 유카리에게 다가간 타카오는 그녀가 전에 말한 의미를 알 수 없었던 구절의 답가를 전하며 이에 그들의 바람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 나의 언어
본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두 인물이 보여주는 인물상은 꽤나 반대적으로 보인다. 타카오는 빨리 어른이 되어 구두 장인이 되고 싶다는 조급함에 현재 자신이 속한 학업을 등한시하거나 진로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이에 대한 상담이나 가까운 이들에게 털어놓지 않는 등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장면을 느낄 수 있으며 그렇게 되고자 하는 어른의 모습을 동경함과 동시에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는 결국 학생의 방식대로 몸을 맡겨버리는 미성숙한 태도를 드러낸다.
반면 유카리는 상처를 받아 이러한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일어서려는 분투를 보여주는 인물로 자신의 잘못이 전혀 없음에도 괴로움에 시달리며 그녀가 꿈꾸던 진로, 적성, 인물상이 무너지자 모든 것을 멈추려 한다. 비록 그녀는 스스로 어렸을 때와 다를 바 없다며 성장하지 않았다는 듯 말하지만 정작 문제 상황에서 이를 대처하는 그녀의 모습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어른의 방법으로 마주하였다는 것에서 타카오와 차이점이 있었다.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과 진로의 길을 걷다 생긴 상처로 발을 옮기기를 멈춰버린 교사의 이야기는 오히려 서로가 상대방을 몰랐기 때문에 ‘넘어져도 괜찮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야. 누구나 처음에는 미숙할 수 있어.’라는 심리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진 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바탕이 되었던 요소는 작품에서 유카리가 언급하며 시작된 만엽집의 구절이었다.
괴로움 속에서 홀로 고통받았으며 의지하려던 존재마저 떠나 무너지지 않기 위해 누구라도 붙잡으려던 유카리에게 타카오가 답가를 이어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아무 사이도 아닌 두 사람이었으나 서로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꿈을 이어가기에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라는 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을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천둥이라는 괴로움의 유무에 ‘나’ 혹은 ‘당신’의 행동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기댈 곳을 마련해 주기 위하여 그 자리를 지킬 때 비로소 다시 일어서 외롭지 않은 자신 또한 있다는 의미를 연상할 수 있었다.
작품의 제목을 언어의 정원이라고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공원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말, 대화라는 언어적 수단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따스한 대화와 언어적 행동에 의하여 정원과 같은 아름다움이나 좋은 관계가 지속될 수도 있으나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장미의 가시가 되어 타인을 상처 입히고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양분 삼아서 그 사람을 이루는 성품이 되기도 하고 그와 어울리는 주변 인물들을 예상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을 보는 동안 장마가 시작되는 기간을 담은 작품과 수국이라는 꽃이 참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수국은 비라는 고난과 함께 성장하여 비록 꽃이 지고 월동을 하게 되어도 다음 해 다시 꽃을 피워낸다는 점 때문이었다. 마치 타카오는 첫 해를 살아가는 수국으로 진로라는 자신의 고민을 견뎌 성장하는 시기일 것이고 유카리는 한 해의 고난을 마치고 다시 일어나 싹을 틔우기를 준비 중이기에 이 수국이라는 꽃이 어울린다고 느껴졌다. 보통 쓸쓸함이나 고난을 의미하는 비가 이들에게는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라는 말처럼 다시 일어서는 의지와 희망을 보여주었고 그들과 같이 어떠한 길을 걸어가려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언어를 보낸다고 생각한 '언어의 정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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