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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ㆍ애니 감상문

일상적이었을 어느 통근 열차에서 생긴 일. 커뮤터 감상문

by 망상바드 2024. 9. 29.

감상문 한 줄 정리

거액의 돈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결과를 알 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이며 통근 열차 속 익숙한 얼굴들 틈에서 특정한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 전직 경찰의 이야기인 커뮤터 감상문.

 

영화 커뮤터 포스터

 

거액의 보상이 있다면 작은 부탁을 들어주실래요?

오전 6시를 알리는 알람과 뉴스로 인해 잠에서 깨어난 마이클은 언제나처럼 바삐 출근을 준비하는데 지난 며칠간 아들의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가족과 조금은 삐걱거려도 그런대로 서로에 대한 사랑과 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러한 갈등 역시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것이라는 듯 출근 열차에 올라탄다. 그가 이용하는 출근 열차에서는 다양한 사람이 쏟아져 나온다. 은퇴를 걱정하는 사람이나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그저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 등 모두가 같은 열차를 타고 있으나 목적지가 같을 뿐 도착한 뒤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앞만 보면서 각자 사라질 뿐인 그런 사이였을 것이다.

 

보험 영업을 업으로 삼아왔으나 뜻밖에 통보받은 해고 소식에 더불어 지난 10년간 헌신하였던 결과가 퇴직금은커녕 보험약관의 변경으로 마친 것에 마이클은 불만이었으나 상사의 판에 박힌 매뉴얼 같은 대답은 앞으로 돈 나갈 일이 가득한 그의 심경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회사의 문밖으로 걸어 나오며 그는 이제 의지할 곳이 없는 혼자가 되었고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가라앉은 기분을 더욱 끌어내린 것은 이 사실을 모르는 아내의 전화 통화였다. 아들의 대학 등록금 관련 이야기를 꺼낸 아내에게 차마 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한 그는 어물어물 상황을 넘긴 뒤 괴로움을 진정시키기 위해 한 술집으로 향한다.

 

마이클은 사실 과거 경찰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하던 사람이었으나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과 미래를 거둔 것이었고 홀로 술을 들이켜는 그에게 당시 함께 일했던 후배가 찾아와 위로한다. 경찰직을 그만둔 뒤 후배를 통해 듣는 내부 사정은 썩어 문드러진 부정과 청탁이 난무하였으며 정도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수고를 들이고 봉사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뿐이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그를 향해 후배는 아내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하였고 마이클은 착잡한 심경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가려 열차로 향한다.

 

일상적으로 이용하던 열차에 타기 직전 마이클은 누군가와 부딪치는데 그저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열차에 올라탔으나 곧이어 휴대전화를 잃어버렸음을 깨닫는다. 여러모로 착잡한 하루를 잊어버리려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낸 그에게 문득 다가와 자신을 조안나라고 소개한 여자는 마이클의 관심을 끌기 위한 대화를 시작한다. 마이클이 잘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부탁을 들어주면 하겠느냐는 질문에 마이클은 그 일이 어떤 일인지 만약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결과가 벌어지고 자신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를 알아야겠다는 듯 말한다.

 

그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마이클에게 조안나는 만약 보상이 주어진다면 어떠하겠느냐고 반문하였고 여러 방면으로 눈치를 보던 그녀는 곧이어 열차의 2번째 칸 화장실에 2만 5천 달러가 들어있는 봉투를 숨겨두었으며 추가로 7만 5천 달러를 원하면 앞서 말한 작은 부탁을 들어주면 된다는 솔깃한 제안을 말한다. 자신들이 탄 이 열차에 타서는 안 되는 사람, 어떠한 가방을 들고 있으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와 그의 가방을 찾는 것이 준비된 돈을 얻는 방법이었고 이 순간 마이클은 가정이라고 시작한 그녀의 말이 장난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경찰이었던 과거까지 알고 있는 조안나가 빙긋 웃으며 열차에서 내려버리자 마이클은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열차에서 내리지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황을 누설해서도 안 되는 답답함을 느끼며 일단 그녀가 말한 화장실로 향하였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말이 사실이라도 된 듯 숨겨진 거금의 봉투를 발견하며 당장 돈이 급한 현실을 위해 열차 내의 모든 사람을 의심할 것인지 고민한다. 곧이어 다음 역에서는 그의 고민을 자극하는 ‘그들’의 연락책이 찾아와 인질로 삼은 가족을 지키고 싶다면 목표를 완수하라고 명령하였고 눈앞이 아찔해진 그는 약속을 어기고 가족의 안전을 파악하기 위해 안면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그의 불안이 가시기도 전에 빌린 휴대전화 너머로 돌아오는 조안나의 목소리는 약속을 어긴 그를 향한 차가운 처벌과 공포였다. 도움을 청한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충격적인 순간을 직면한 마이클에게 조안나는 선택에 합당한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고 점차 그를 압박한다. 누구도 그에게 강제로 일을 시키지 않았고 돈을 가져가라고 위협을 가하지 않았으나 결국 돈을 선택한 마이클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 그리고 가족의 안전을 위해 얼굴이 익숙한 사람들 틈에서 신원미상의 누군가를 찾는 의뢰를 계속하는데 과연 그가 얽힌 일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에게 시련을 내리는 것일까? 그리고 그는 ‘그들’을 위한 명령을 완수할까?

 

커뮤터 감상문 썸네일

 

일상적인 지옥철을 경험하는 커뮤터들

언제나 서울에서는 출근 시간대의 혼잡함과 답답한 이용환경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었으며 여러 노선과 편성에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만족도의 가시적인 효과는 미미하였다. 당연히 국가 차원에서 주도하여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지속하여야 할 교통의 중요성과 역할을 시민들도 인정하고 있으나 출근길이라는 그들의 행선지와 지옥철이라는 환경은 분명 열차라는 객체적인 요소만이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이유로 현재 부분적으로 개통하고 추가적인 건설 및 확장을 추진 중인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는 기존의 교통환경과 편의성 등을 넘어설 계획으로 시작된 사업이지만 실상은 여러 비판과 논란 가운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행보를 보인다는 사실을 연관 지어 떠올려 볼 수 있다. 만약 개선된 열차와 대중교통 환경만이 사람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친다면 투자의 결과가 긍정적이어야만 하겠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들이 지옥철이라는 오명을 가진 무시무시한 입구로 향하는 것은 이러한 불편함을 넘어선 자신의 환경을 직면하기 때문이다.

 

노동의 결과로 얻은 소득, 개인의 역량 개발, 꿈꾸던 미래의 실현 등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문제와 고민을 품은 채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날마다 치열한 전쟁터로 향하는 커뮤터들이다. 그러나 출근을 위한 열차에서 사람들은 그저 객체가 된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목적지를 향하는 거대한 화살에 몸을 맡겨 누가 어디로 향하는지, 주위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더는 상관없이 그저 손바닥만 한 작은 화면에 자신을 가두어 타인과의 연결을 단절하려 한다.

 

이 작품에서 마이클이 책을 읽는 것처럼 혹은 다른 누군가가 신문을 읽는 것처럼 좌석이라는 나만의 공간을 침범받지 않으려 점점 주변을 경계하고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잠깐의 시선만 던질 뿐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그들의 태도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타인을 알 수 없는 운명으로 이끌어버렸다면 나에게는 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니까, 타인에게 벌어진 일은 대수롭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눈을 돌려버리는 행동은 어느샌가 조안나의 꼬임에 넘어간 하수인들이 보여주는 비겁함과 같을지도 모른다.

 

타인에 대한 이해를 짓밟는 신조어

그렇다면 조안나의 제안에 돈을 택한 마이클을 보고 ‘아니, 당신이 돈을 택한 것이잖아요. 누가 당신에게 처음부터 돈을 고르라고 협박이라도 하였나요?’라는 말을 꺼낼 수도 있다. 인터넷에서 한동안 타인의 선택에 따라다녔던 댓글은 ‘누칼협’이라는 신조어였다. 이는 ‘누가 그걸 하라고 칼을 들고 협박이라도 했느냐’라는 뜻을 담아 누군가의 선택과 고민을 조롱하는 표현으로 결국 선택한 것은 자신이며 싫다는 뜻을 가졌으면 포기하던지 이를 실행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을 선택의 결과를 보고 불만이나 불편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미로 사용되곤 하였다.

 

하지만 이 인터넷 용어의 문제는 부적절한 상황에서도 혹은 변질되어 사용되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나 공감을 무시하는 태도에 있다는 것이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판단한 내면 심리가 이들을 냉소적으로 만들고 자신이 속한 환경을 조금씩 폐쇄적으로 바꾸며 이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그들'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에게 가해질 결과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에 대해 이 작품을 보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폐쇄적인 태도는 긴장과 불안으로 이어져 결국 타인에 대한 의심과 자신마저도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의 배경이 사건의 중심이 되는 열차인 것도 일상적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의심하게 되는 마이클의 상황을 더욱 잘 드러내려는 장치라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와 상관없는 타인에게 벌어진 결과에 대하여 둔감하게 느낄지도 모르지만 마이클이 역경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과 타인에게 가해질 영향을 고민하며 결정하였던 선택처럼 누칼협이라는 말보다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는 가치를 느낀 영화 ‘커뮤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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