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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ㆍ애니 감상문

나의 동료는 14,000년을 살아온 원시인이었다. 맨 프럼 어스 감상문

by 망상바드 2023. 8. 27.

영화 맨 프럼 어스 포스터

 

14,000년을 살아온 크로마뇽인

10년간 교직에 있던 존 올드만은 마음만 먹으면 종신 재직권을 얻어 학과장까지 될 역량과 동료들의 신임이 있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그동안의 생활을 뒤로한 채 사임을 표한 뒤 떠날 준비를 했다. 뜻밖의 소식에 동료들은 그가 이별을 전하려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섭섭함을 느꼈지만 그래도 함께했던 시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조촐한 송별회를 준비하였다. 동료들이 그의 거처에 도착하고 그의 후임 이야기 또는 자그마한 대화를 주고받은 후 모두가 궁금하게 여겼던 ‘왜’ 그가 갑자기 떠날 생각을 하였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동료들은 혹시 그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커다란 문제를 겪거나 건강상의 괴로움이 있는 것인지를 걱정하지만 존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였고 그저 자신에게 역마살이 있다는 듯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성격이 아니라는 말을 꺼낸다. 10년이 지났음에도 처음 그를 보았을 때처럼 세월의 흐름이 보이지 않은 그는 이미 여러 곳을 떠돌아다녔으며 이러한 이별이 처음이 아니라는 말을 담담하게 고백하나 동료들은 자신들보다 젊게 보이는 그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 자신도 고백하고 싶은 바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음에도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동료이자 친구인 이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한참을 고민한 끝에 존은 질문을 하나 건넨다. “후기 구석기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현재까지 살아있다면 어떨까?”

 

누군가는 시답잖은 농담으로 받아치거나 원시인이 우리와 같이 살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는데 결국 그들은 각 분야의 교수였고 크로마뇽인과 자신들 사이에 본질적인 큰 차이가 없으며 생존하면서 계속 진화했을 터이니 그 간격은 더욱 메워져 그동안 살아온 그의 방대한 경험은 오히려 더욱 가치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문제는 가정은 가정이라는 것이고 눈앞에 보이는 한 남자가 말하는 공상과학 소설과도 같은 내용이 과연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이별과 무슨 연관이 있을지 호기심과 의구심의 불이 붙기 시작했다. "완전한 세포의 재생으로 무려 14,000년이나 살아왔다면 그게 과연 축복일까?"라는 말을 꺼내는 존에게 동료들은 호기심에 눈이 빛났고 마침내 결심한 존은 방금 예로 든 그 가상의 인물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흘렸다. 그가 10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항상 그동안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곳으로 떠났던 것은 주위에서 그가 늙지 않는다는 사실과 그의 비밀이 들킬 우려를 피해 스스로 종적을 감추었던 것이었고 여전히 가상의 시나리오라고 여기는 동료들에게 그는 자신이 겪었던 비밀의 보따리를 조금 더 풀기 시작한다.

 

 

 

맨 프럼 어스 감상문 썸네일

 

헛소리라는 단정에서 의구심을 거쳐 기존의 믿음이 흔들리기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존이 이사를 준비하며 떠날 예정인 오두막집과 부근에서 진행되는데 배경의 전환이나 과거 회상 등 사람들의 주의를 새롭게 바꾸는 요소 없이 동료이자 의사인 윌의 등장이나 동료들이 꺼내는 여러 주제에 존이 대답하는 것과 같은 몇 가지 기능만으로 긴장감과 집중을 끌어올리는 연출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동료들과 존이 나누는 여러 주제는 인류학, 생물학, 정신의학 등을 거쳐 자연환경에 관련된 우려나 종교까지 미친다. 그리고 모두가 그의 논리를 반박하려 하지만 존의 논리에 증거만 없을 뿐 그럴싸한 짜임새가 있고 어떠한 물음에도 답을 내놓은 상황에 점차 그의 말에 빠져들어 긴가민가하다가 그들 나름대로 어떠한 인정에 도달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관객의 입장으로 마치 나도 그에게 설득되는 것과 같았고 그들의 대화 속에서 제목인 맨 프럼 어스가 그의 논리에 의해 2가지로 해석되는 것을 느꼈다.

 

맨 프럼 어스(Man from earth)의 관점

존은 자신에게 생긴 변화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처음에는 자신이 무엇인가 죄를 지어 벌로써 그런 신체가 되었는가를 생각하다가 아니면 이것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혹은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아 그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조건이었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고민하던 그는 그냥 어쩌다가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결론에 도달해 그렇게 태어나버린 지구에서 여러 지역, 국가, 공간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저 태어난 그대로 살아가던 자연상태의 그 시절을 생각하며 지금은 발전을 위해 나날이 커지는 도시와 과학기술로 인해 변화되고 손상된 자연에 대한 아쉬움이 섞인 생각을 토로한다. 그 자신이 14,000년이나 살면서 그동안 인류가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파괴했던 수많은 자연환경, 자신이 살아왔던 터전을 잃기도 했을 것이기에 지구로부터 태어난 생명체인 인류가 그리고 그 자신이 망가뜨리고 말았던 환경을 이야기할 때 왠지 모르게 서글프게 느껴졌다.

 

존은 언제나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나타나야 했기에 그에게 무엇인가를 손에 쥐고 남겨둔 채 소유라는 개념을 품을 여유가 없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삶이라는 목표에 그것이 어떠한 가치를 품고 있다고 하더라도 물건은 그저 물건일 뿐이었다. 이와 더불어 신성모독이라고 여겨질 듯한 냉소적인 종교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 자신이 부처의 가르침을 서방 세계에 적용하고자 전했던 말이 현대의 해석으로 살을 덧붙여 예수가 세상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으로 변모했다는 설명에서 그는 현대 기독교에서 신의 아들이자 세상의 죄를 짊어졌던 희생자 예수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종교의 변화는 자신을 존이라고 소개했음에도 어느새 신의 아들 예수가 되어 초기의 가르침과 해석에서 벗어나 자신들을 위한 안정적인 울타리를 만들며 다른 이들에 대한 존중을 갖지 않은 채 적으로 간주하여 철저하게 배제하는 잔혹함으로 바뀌었고 계몽이나 학습을 위한 학교는 신전이나 교회가 되어 진실로 바라보아야 할 가치 대신 허울이나 겉치레, 자신들의 영광을 위한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빠져드는 수렁의 공간이 되었다는 듯 설명한다.

 

존은 항상 자신이 지구에서 태어난 생명체 가운데 조금 특별할 삶을 살아온 그저 오래 산 인간(Man from earth)이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신분이나 부, 특수한 능력 등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본질은 지구에서 태어난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스스로 오만하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자신과 같이 겸손한 자세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맨 프럼 어스(Man from us)의 관점

그도 처음부터 늙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기억하는 첫 번째 삶은 고대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가 35살까지 보통 사람과 같이 나이를 먹으며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고 이후 늙지 않는 그를 보고 주위에서는 신비하게 여기며 숭상하기도 했지만 어느새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는 힘에 두려움을 느끼고 그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무리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지금과 같이 떠나는 생활을 계속했다고 말하는 존의 모습은 끊임없이 반복된 새로운 시작과 이별 가운데 흔하디 흔한 존이라는 남성적인 이름과 덧붙이는 올드만(old man)이라는 성은 어디에도 있을 수 있고 누구나 될 수 있는 그가 어쩌면 우리의 일부(Man from us)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주위의 동료들은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를 이해하는데 그들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존이 규정되어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신념의 바깥에 존재하는 존이 그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는 방어적이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세상을 살아가고 공동체에 속하며 내가 익숙하게 느꼈던 무엇인가가 사실은 꾸며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의 본성을 보게 되었다.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존이 주위를 살피고 동료들의 표정을 본 이후 그들이 바라는 대답하는 장면이나 다시 떠날 시간이 되었다는 듯이 차에 탄 이후 샌디가 차에 타기를 기다리고 그녀와 함께 떠나는 장면은 존이 기존의 공동체와 이별하고 새로운 무리에 속하여 그들의 일원으로 살아갈 것이지만 이별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 발걸음이라고 느껴지며 다시 현실로 되돌아와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의 일부분으로 녹아드는 그의 앞날을 보여주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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