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려버린 봉인과 어머니의 일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어렸을 적 추억이 함께하는 외갓집으로 이사 온 사츠키는 아버지, 동생 케이치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가족을 찾아온 고양이 카야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골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었다는 외할머니와 그 학교에서 학생으로 졸업한 어머니의 이야기는 사츠키에게 조금이나마 친근감이나 안도감을 느끼도록 하였지만 어머니가 지냈을 적 함께했던 구 교사 대신 새롭게 지어진 신 교사는 새롭게 개발되며 과거의 흔적을 파괴하는 것과 같이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도 했다.
첫 등교일에 동생 케이치로가 낯선 환경에 겁을 먹고 카야와 함께 학교에 가려고 하는 것을 알게 된 사츠키는 카야를 집에 놓아주고 오라고 하였으나 카야는 갑자기 케이치로의 품을 빠져나와 구 교사로 유유히 들어갔고 이들은 함께 구 교사로 향한다. 구 교사로 향하는 남매를 본 이웃집의 하지메와 그의 친구 레오는 그곳이 유령이나 요괴가 들끓는 장소이기에 학생들의 출입을 막아놓은 것이라며 돌아가자고 설득하지만 이제는 소중한 가족이 된 카야를 잃을 수 없었던 남매는 구 교사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하며 이를 가만히 볼 수 없었던 하지메, 레오, 우연히 그곳을 찾아온 신비로운 분위기의 선배 모모코 역시 함께 구 교사로 들어간다.
역시 유령이나 요괴가 출몰한다는 장소에 걸맞게 깜짝 등장하여 사츠키 일행을 놀라게 만드는 존재들과 그중 가장 무섭게 자신들을 따라오는 대요괴 아마노자쿠를 피해 아이들은 겁에 질려 어떤 공간에 숨어들었고 그곳에서 사츠키의 어머니가 어릴 적 썼던 일기를 발견한다. 일기에는 그날그날 만난 요괴나 귀신 등을 봉인했던 이야기가 적혀있었으며 아이들은 무분별한 도시의 재개발과 자연의 훼손으로 기존의 봉인이 망가져 요괴들이 다시 날뛰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따라온 아마노자쿠가 일행을 위협하는 순간 어머니의 일기에 적혀있는 봉인 방법을 통해 간신히 그를 막게 되는데 봉인을 위한 적절한 공간이 마련되어있지 않았던 탓에 아마노자쿠는 하필이면 가까이에 있던 고양이 카야의 몸에 봉인되었고 불완전한 봉인으로 카야를 잃을 수 없는 남매는 어쩔 수 없이 아마노자쿠를 받아들여 함께 지낸다. 학교괴담은 이후 사츠키 일행이 경험하는 다양한 괴담 속 요괴나 귀신 그리고 그들의 봉인, 성불, 소멸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학교괴담이라는 제목의 의미
학교괴담이라는 제목을 보고 최근에 알려진 지박소년 하나코 군과 유사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제목인 학교괴담은 사츠키의 어머니가 초등학생일 때 겪었던 요괴들이나 혼령의 이야기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재잘거리는 가운데 그들 사이에 자연스레 주변에 퍼지는 그리고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괴담이 학교에 모여있다는 의미도 함께 품고 있다. 무서워하면서도 친구들과 함께 무서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멈추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어렸을 때 무서움에 살짝씩 눈을 피하면서도 그 내용이 궁금해 보게 되었던 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추억 그리고 이 애니메이션과 더불어 그 시절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무서운 게 딱 좋아 시리즈, 여러 인터넷 괴담을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하고 으스스한 분위기에서 다른 친구를 놀라게 하였던 이 만화에 나오는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는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오드아이의 검은 고양이 카야를 등장시키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추가한 것은 고양이라는 생명체가 지닌 신비로운 전설을 은연중에 흘리는 것이다. 현세와 저세상을 오가며 양쪽의 모든 존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 어두운 공간에서 날카롭고 빛나는 눈으로 모든 것을 꿰뚫는 듯 영험한 기운을 지닌 존재, 9개의 목숨을 지니며 한을 품으면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강력한 원귀가 되어버리는 존재 등 고양이와 관련된 설화나 괴담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으며 그와 동시에 영물이거나 요물로 다루어지는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신비로운 생명체로 여겨졌던 고양이에게 대요괴가 봉인된 이야기도 이 만화의 매력을 더욱 놓이는 요소였다. 다시 내용으로 돌아와 학교에서의 일 뿐 아니라 지역이나 공간을 가리지 않고 당시에 유행했던 수많은 괴담을 각색하여 흥미롭게 만들었던 것이 지금 다시 보아도 아니, 눈을 돌리지 않고 처음부터 찬찬히 볼 수 있게 된 지금에서야 다시 보이게 된 점이었다.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어린이
오프닝 곡에서의 밝은 분위기는 오히려 전체적인 내용을 알게 되는 상황에서는 이질적이고 뜬금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괴담 속의 존재들과 싸우거나 그들을 봉인하는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 어떻게 웃으면서 밝은 이미지를 보일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노래의 가사를 다시 살펴보게 된다. 너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나 알지 못하는 이야기는 바로 작품의 주제가 되는 괴담을 의미한다. 여러 괴담과 외로워하는 그 이야기의 존재들은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그럴싸하고 거짓말 같은 힘을 보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창의력이 살아 숨 쉬고 끝없이 펼쳐진 가능성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이들이 있기에 괴담에 살이 붙고 생명이 깃들어 현실의 아이들 주변을 맴돈다. 아이들의 밝은 분위기는 바로 ‘두려움’과 ‘관심’이라는 그들의 존재의의를 부정하는 것이기에 이야기를 시작하는 아마노자쿠와 마지막 화의 의연해진 아이들의 모습은 성장하여 이전에 가졌던 두려움이 사라지며 이제는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해 애써 밝은 척을 하던 사츠키와 더불어 아이들 내면의 성장이라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요소임을 마지막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가족
작품에서 사츠키 일행에게 위기가 있을 때마다 어머니의 영혼이 모모코에게 빙의되거나 카야의 몸에 봉인된 아마노자쿠가 도와주는 장면은 가족이라는 가치를 더욱 빛낸다. 어린 남매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어머니의 죽음은 작품 중간까지 아이들에게 족쇄처럼 다가오지만 위기의 상황에 대처할 방법을 알려주거나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족이 된 카야의 몸으로 도움을 주는 아마노자쿠의 모습을 통해 가족의 상처를 회복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성장하여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인 아이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머니의 부재로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사츠키는 자신도 초등학생이기에 응석을 부리고 싶겠지만 더 어린 동생의 앞에서는 이를 감추려 노력하고 똑같이 깊은 상심 가운데에서도 자신들을 위해 애써 드러내지 않는 아버지에게도 어떠한 투정을 부리지 못한 채 마음속에서만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때때로 아버지가 사츠키의 행동에서 어머니의 향수를 느낄 때 동생을 야단치거나 응석을 받아줄 때와 같이 가족의 주위에 녹아있는 어머니의 존재와 그녀가 마음속에서 함께 한다는 사실이 사츠키가 무너지지 않고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단단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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