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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ㆍ애니 감상문

누가 집사인 건지. 야무진 고양이는 오늘도 우울 감상문

by 망상바드 2023. 9. 24.

야무진 고양이는 오늘도 우울 애니메이션 일러스트

 

고양이가 이렇게 크게 자라는 거였어?

평화로운 일상이 흘러가는 어느 하루 누군가는 아침 산책에 나서고 누군가는 출근하며 누군가는 가족이 먹을 아침 식사를 차리고 있다. 알람 시계가 울리고 잠에 빠진 한 여자를 깨우는 누군가는 그녀를 위한 도시락을 준비했고 잠기운이 가시질 않았는지 여자는 비틀거리면서도 출근을 위해 뛰어가 무사히 전철을 타고 평소와 다름없이 훌륭한 사회 구성원의 하나가 되어 주어진 업무를 완벽하게 진행한다. 회사원 후쿠자와 사쿠는 고양이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회사에서도 업무 중 몰래 고양이 사진을 검색하다가 그 모습을 후배에게 들키게 되었다.

 

전에는 본 적이 없이 고양이를 검색하는 사쿠를 지켜본 후배는 특별히 고양이를 검색하는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았고 사실 고양이를 키우는데 얼마나 크게 자라는 것인지가 궁금해서 검색하고 있었다고 사쿠는 대답한다. 혼자 사는 사람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말하는 후배는 언젠가 고양이와 함께하기 여의치 않게 되면 대신 맡아주겠다는 말까지 했고 사쿠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아침에 급하게 챙긴 도시락을 꺼낸다. 정성이 가득 담긴 도시락은 잠시 일에 지친 사쿠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게 하기에 충분했으며 그 힘으로 업무를 마친 사쿠는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집사(?)들이 그러하듯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반려 고양이 유키치를 찾는 사쿠는 오전에 후배가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해 본다. ‘언젠가 고양이를 키우기 어려워지게 된다면 본가에 부탁드려 볼게요.’ 만약 유키치가 다른 고양이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고양이였다면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녀가 바라본 반려 고양이는 집안일을 하다가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사람만큼 거대한 고양이였다. 평소보다 늦게 귀가한 사쿠에게 유키치는 토라졌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는데 기껏 따뜻하게 준비한 저녁 식사가 다 식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며 식었지만 맛있는 식사를 끝낸 사쿠는 그때부터 게으르게 행동하기 시작했고 이를 본 유키치는 그 모습이 일상이라는 듯 쉬지 않고 그녀가 씻을 수 있게 준비 후 자신이 만들었던 도시락이 깨끗하게 비워진 것을 보고 만족한다.

 

다음 날도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사쿠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유키치는 사쿠가 출근할 때까지 그녀가 회사에 가기 싫다는 투정을 들어준다. 많은 고양이가 그러하듯이 물이 닿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화장실 청소와 같은 집안일을 끝마치고 오늘도 사쿠를 위한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회사 업무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녀를 대신하여 집안일을 계속한다. 물론 유키치가 처음부터 거대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느 눈이 많이 오던 날 쇠약했던 조그마한 고양이는 평범한 고양이와 다르지 않았으나 사쿠가 데려와 함께했던 3년 동안 생활력 제로라고 생각될 만큼 집안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쿠를 대신하고 자신을 따스하게 받아준 그녀를 돕기 위해 야무진 고양이는 어느새 크게 자랐던 것이었다. 유키치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구해준 은인이며 자신의 눈에는 한심한 행동을 보이는 사쿠이지만 그녀가 건강하게 제대로 일을 하고 사람답게 생활하여 벌어온 돈을 통해 고양이용 사료와 간식을 먹을 수 있도록 집안일을 대신하며 오늘도 그녀의 뒷바라지를 계속한다.

 

 

야무진 고양이는 오늘도 우울 감상문 썸네일

 

사람 같은 고양이

다른 고양이보다 많이 거대하다는 점과 영리한 머리와 야무진 손놀림으로 집안일을 막힘없이 준비하는 것을 제외하면 유키치도 여느 고양이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고양이들이 그러하듯이 츄르라고 불리는 간식을 좋아하거나 고양이 장난감에 흥미를 보이고 물이 닿는 것을 싫어하거나 귀찮게 달라붙으면 신경질을 부리는 것도 그러하다. 하지만 유키치가 하는 행동을 보면 집안일을 하는 어머니나 딸의 투정을 받아주는 아버지, 일하고 돌아오는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의 모습이 모두 합쳐진 듯 느껴진다. 때로는 집사인 사쿠와 반대로 유키치가 집사처럼 행동하며 통장에 남은 돈을 보고 머리를 싸매거나 사쿠의 늦은 귀가를 염려하는 장면, 밖에 놀러 나간 사쿠가 걱정되어 따라나서는 등 유키치가 하는 행동은 사람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이 반려동물이 내 생각을 알아주고 표현을 받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이 아이가 하는 표현을 나도 이해하고 싶다 등의 생각을 하며 반려동물 행동 전문가의 조언을 듣기도 하는데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이 표현된 동물이 바로 유키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동물, 사람의 생각과 표현을 알아듣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는 동물, 합리적인 소비와 학습을 통해 더 나은 삶을 꿈꾸는 동물은 아마 이 만화에 나오는 유키치가 유일할 것이다. 평범하지 않은 고양이라서 주변에 알릴 수도 자랑할 수도 없고 밖에서 유키치의 정체가 들키지 않도록 조심히 행동하기도 하지만 집에서만큼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고 남들은 모르는 비밀스러운 모습을 자신들만 알고 즐기는 소박한 일상의 모습이 귀엽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야무진 고양이와 허술한 집사

‘야무진 고양이는 오늘도 우울’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나름대로 생각할 때 떠오른 것은 역시 유키치가 완벽하게 수행하는 집안일이다. 영특한 머리를 바탕으로 어지간한 사람보다 더 야무지게 집안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쿠를 기다리는 유키치의 모습은 외로움을 느끼는 독신의 사회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반려동물이나 배우자를 합친 모습이다. 그리고 이렇게 야무진 고양이 유키치를 우울하게 만드는 원인은 회사에서와는 달리 집에서는 글러먹은(?) 인간이 되어버리는 사쿠의 행동이다.

 

그녀의 행동은 평범한 집에서라면 어머니 혹은 배우자에게 등짝을 맞을만한 그리고 잔소리를 듣기에 충분하기에 뒷바라지를 하는 유키치가 오늘도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는 상황에 웃음이 나면서도 이 일상적인 둘의 유대관계가 그들에게 소중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 둘 사이의 유대감으로 함께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가끔 보여주는 고양이다운 모습에서 사쿠는 귀여움을 자신이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고 도시락을 남김없이 먹어주는 모습에서 유키치 역시 행복을 느낀다. 때로는 우울할 때도 있지만 둘 사이의 유대가 끊어지지 않고 비밀스러운 삶을 함께 살아가는 것은 역시 함께할 때 느끼는 행복이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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