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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ㆍ애니 감상문

제멋대로 행동하는 힐러는 어떠신가요? 이 힐러, 귀찮아 감상문

by 망상바드 2023. 7. 15.

이 힐러, 귀찮아 애니메이션 일러스트

 

이상하지만 재미있는 파티원들

광대한 대륙과 각양각색의 몬스터 그리고 마법이 있는 이 세상에서 인류는 생존하고 있었고 그런 강력한 몬스터와 전투해서 살아남는 모험가, 즉 용사들 또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인류의 안정된 삶과 세계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주인공 앨빈은 자신도 이 이야기의 모험가들처럼 세계와 인류의 평안을 위해 싸우기를 결심한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자신을 소개한 찰나에 몬스터를 마주하고 거침없이 싸움에 나서지만 이렇다 할 제압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압도되어 점차 밀리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위기의 순간 갑자기 다크 엘프 종족의 힐러 한 명이 곁으로 다가와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는데 그녀는 ‘카라’라고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옆에서 가만히 구경하고 있었고 슬슬 힘에 부치는 앨빈은 도움을 요청하지만 카라는 앨빈의 요청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다가 “남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는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부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반문한다.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몬스터마저 당황하자 앨빈은 몬스터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며 싸움을 멈추었고 카라의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오히려 이 힐러는 어째서 앨빈에게 짜증을 내느냐고 말하며 자신에게 화풀이를 하지 말고 스스로의 약함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애초에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 말에 앨빈이 짜증을 내면 카라는 그가 고함을 지른다는 이유로 주눅이 든 것처럼 행동하였고 의기소침해져 훌쩍거리는 그녀에게 마음이 약해진 앨빈이 사과를 하면 “사과는 공손하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다시금 화를 돋우는 말을 꺼내는 카라였다.

 

어쩔 수 없이 도움이 필요한 앨빈이 먼저 머리를 숙이고 대화를 이어가며 자신을 도와주면 부탁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카라는 자신과 파티를 맺어줄 것을 조건으로 도와주게 된다. 그리고 앨빈의 체력회복 요청에 마법을 시작하는 카라는 실수로 그에게 저주를 걸어버렸으며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되면 죽게 되는 저주로 파티를 해산하는 것도 여의치 않게 되어버린 상황에 두 사람이 싸우자 오히려 이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몬스터가 둘 사이를 중재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그런 도중에 어처구니없게 부상을 당한 앨빈을 몬스터가 카라와 함께 자신의 거처로 데려왔고 잠시 후 깨어난 앨빈은 카라가 큰 부상이 생긴 자신을 회복마법을 통해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주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고마움을 느끼려는 순간 카라는 자신의 마력이 모자라서 그의 얼굴을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키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기 시작했고 거울을 본 앨빈은 완전히 원래의 상태가 되어있다고 말해도 오히려 미안하다고 자책하는 카라에게 점점 짜증이 올라왔다. 시간이 지나 진정이 된 앨빈은 몬스터의 거처를 떠나야 함을 의식하고 카라와 함께 몬스터와 이별하는데 이 순간에도 카라는 둘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계속하며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다. 약속을 들어준 대가로 앨빈은 카라와 파티를 맺을 결심을 했으며 1분 1초 매 순간순간 주변 사람을 열받게 만드는 힐러와 너무나도 약한 전사 모험가가 함께하는 이 파티의 모험이 시작된다.

 

 

이 힐러, 귀찮아 감상문 썸네일

 

어딘가 독특한 힐러

원작인 만화를 보았을 때는 카라가 조금 더 화를 돋우고 훨씬 심하게 비아냥거리며 앨빈을 매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그러한 부분은 조금이지만 줄어들고 대신 힐러라는 후위직업의 특성상 연약해 보이는 순간이 드러나도록 성격을 조정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 스스로 자신을 힐러라고 소개하였고 실제로 앨빈의 상처를 치료해주기도 했지만 카라가 보여주는 여러 행동이나 특별한 마법에서는 그녀가 오히려 성직자나 힐러라기보다는 네크로맨서(강령술사)나 소환술사, 블랙 매지션(어둠의 마법사) 등 어둠 마법에 더욱 어울리는 경향을 보이거나 힐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몬스터에게 대화를 먼저 걸며 차별하지 않고 그들을 대하는 모습이나 고통스러워하는 몬스터에게 치료마법을 통해 치유하기를 바라는 모습, 힐러라는 직업에 걸맞게 치유 마법을 사용하는 장면에서는 힐러이자 성직자로서 박애의 정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자신을 위한 속물적인 계산이 전제가 되기는 하지만 그녀의 내면에 부끄러워서 표현하지 못하거나 생각지 못한 단어가 튀어나오는 것일 뿐 그녀가 악인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카라가 언젠가 앨빈에게 말했던 제로에서 무엇을 곱해도 제로인 것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제로인 누군가는 더하기를 해야 한다는 이 말에 담긴 뜻은 아마 이러한 마음씨에서 나에게 주위의 이웃을 더해 변화하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바람이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저 약한 초심자 앨빈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급격하게 강해지는 편법보다는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수행이 더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고 혹은 파티를 이어가며 상극이었던 두 사람이 서로 맞물려가며 어떻게든 계속하는 여행의 추억이 쌓이는 것을 더하기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해보았다.

 

두 사람은 여행이 계속될수록 물론 서로를 받아들이지는 않으나 서로의 성향이나 언행에 적응한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외톨이이자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해 파티를 맺을 수 없었던 서로가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모험을 계속하는 것에 파티원으로서 상대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다. 특히나 카라는 앨빈과 처음으로 공략한 던전에서 받았던 기념품을 소중하게 여기는데 이 장면은 말로는 툴툴거리고 제멋대로인 귀찮은 힐러가 함께 만드는 추억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의 이러한 성격에도 말로는 짜증을 내지만 해산하지 않고 함께 어울려주는 앨빈의 호의에 기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와 다른 이를 배척하려는 인간의 존재

작품의 시작에서 끝까지 앨빈의 전체적인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데 앨빈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가 그를 우리에게 대입해 보라는 작가의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대한 명성을 이룬 이들을 동경하며 그들과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을 결심하고 새로운 세상에 뛰어들었으나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성취나 성장은커녕 같은 길을 맴도는 듯한 느낌을 받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 수많은 노력과 성실하게 보낸 일상은 나를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뒤늦게 시작해도 벌써 나를 앞서가는 동료나 경쟁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 우리는 “제로에서 무엇을 곱해도 제로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럴 때는 더하기를 해야 한다.”라고 카라가 말한 한 문장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한 가지 방법이 나에게 작용하지 않았다면 다른 방법을 시도하면 될 뿐이니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처음 몬스터를 대면할 때 무작정 몬스터라는 이유로 적으로 간주하고 전투준비에 들어서는 앨빈이나 그들을 공격하며 처치한 끝에 자신들의 안전이 계속된다고 생각하는 인류에 대한 문제 제기일 수도 있다. 오히려 몬스터들은 반대로 자신들의 구역에서 저마다의 생활을 이어갈 뿐 인간에게 적대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며 도움이 필요한 인간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힘이 되어주거나 대화를 원만하게 주고받아 서로의 힘이 되어주는 등 오히려 인간보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선이라고 느껴지는 상황도 있었다. 인간이 가장 잔인해지는 순간이 나, 우리와 다른 무엇인가를 보았을 때 배타적으로 행동하며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적으로 간주하고 제거하려 바뀔 때라는 것을 어떤 글에서 본 기억이 있다. 나이, 성별, 국가, 인종, 언어 등 인류는 치열하게 살아온 만큼 나와 다른 무리를 불편하게 여겼고 나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이 전혀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떠넘기는 이러한 문제를 작가가 꼬집어서 보여준 것이 아닐까? 카라가 앨빈의 말에 제멋대로 대꾸하거나 행동하는 것 역시 문제를 일으키는 이러한 현실에 맞장구를 치기 싫어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행동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전형적으로 힐러라고 하면 떠오르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박애 정신으로 성실하고 차분하게 조직의 안전을 위한 치료를 전담하는 이러한 모습과는 달리 엉뚱하고 자의식 과잉의 성향을 보이며 때로는 나르시시즘적 행동을 하는 독특한 힐러 캐릭터에게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이 힐러, 귀찮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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