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자리에서 영웅이 되기보다 어둠의 자리에서 수호자가 되기를 택한 배트맨을 보여주는 영화 다크나이트 감상문입니다.
언제나 선택을 강요받는 배트맨
5인조의 광대 복면을 쓴 강도들이 은행의 옥상과 정문으로 침입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그들 사이엔 어떠한 의리나 동료 의식이 없으며 그저 돈만이 연결고리로 작용합니다. 조커에게 지시를 받은 그들 중 일부가 한 명씩 같은 편을 죽여도 네가 없다면 내가 받을 몫이 늘어난다는 생각에 주저하지 않고 실행에 옮기며 거액의 돈을 챙기는 강도들입니다. 마침내 한 명의 강도만 남았는데 얼핏 보이는 푸르스름한 머리카락 끝자락에 전율하는 것도 잠시 복면을 벗은 그는 역시 조커였습니다.
엄청난 돈을 훔친 조커는 지역의 갱들과 연관되어 있었고 브루스 웨인이 범죄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퍼뜨린 특수한 지폐로 인해 그들의 자금원이 막히게 되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그들은 조커를 고용하였고 배트맨과의 대결을 고대하며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줄 거대한 판을 짜기 시작합니다.
고담시의 지방검사인 하비 덴트는 언론에 정의의 백기사라는 찬사를 들으며 자신의 정의를 관철하고 검찰뿐 아니라 경찰 반장 고든에게도 경고하며 조직 내부의 썩어버린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는 것에 노력합니다. 어쭙잖게 자신을 따라 흉내를 내는 이들에 질려버린 브루스 웨인도 이번만큼은 어둠의 방식이 아닌 정당한 법의 심판을 내릴 수 있는 자신의 대체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조커가 자신과 대결하기 위해 하비를 노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언제나처럼 선택을 강요받고 한발 늦은 배트맨에게 조커가 남기는 선물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자신의 정의마저 꺾여버린 추악한 복수귀가 되어버린 하비였습니다. 하비는 그토록 자신이 경고했던 내부의 배신자를 조심하여 빠르게 색출하라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던 경찰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자신의 몸은 심각한 화상을 입어 추한 모습이 되었으며 자신의 신념, 세계관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습니다. 그 틈을 탄 조커의 악마와도 같은 속삭임으로 정의의 백기사는 부당한 세상에 울분을 토하는 괴물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자신의 조언을 흘려 넘겼던 고든에게 복수를 마무리 짓기 위해 아들을 인질로 삼지만 조커를 구속한 뒤 도착한 배트맨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든에게 모든 사건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라고 말하는 배트맨은 사람들의 기억에 하비를 정의의 편으로 남도록 결정하고 모든 책임과 악역을 자처하여 희생양이 되어 경찰의 손에서 도망치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자신의 손으로 결과를 쟁취하던 하비 덴트
정의의 백기사이던 시절의 하비는 결과를 손에 넣기 위해서 과정은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합니다. 항상 품에 지닌 양면이 같은 동전은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자신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자기 암시를 걸어주며 잘못된 선택은 있을 수 없다는 그의 올곧은 신념을 대표하였지만 납치된 후 배트맨에 의해 탈출하며 생긴 동전의 손상으로 더는 양면이 같지 않게 되었고 그의 내부에 잠식된 어둠 또한 드러나 타인의 목숨을 손쉽게 생각하게끔 변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비는 좌절의 맛을 본 우리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성공 가도를 달리며 자신의 성취에 취해있을 때도 있지만 좌절을 경험했을 때, 스스로 무너지는 것 같은 감정이 생길 때, 온 세상이 나를 억압하며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정의의 편에 있던 시절의 하비를 떠올리며 무너지지 않고 자기 암시를 걸어 다시 성과를 쟁취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10분 전에 하지 못한 일을 대신해주지
조커가 배트맨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인간의 본성은 자신의 욕구와 생존을 위해 타인을 짓밟는 잔혹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영화 후반에 나온 두 배에는 죄수와 일반 시민이 각각 타고 있었고 그들의 배에 상대 배를 침몰시킬 수 있는 폭탄의 기동장치가 놓여있었습니다.
조커는 제한 시간 안에 서로의 배를 침몰시킨다면 자신들은 살려주겠다는 잔혹한 딜레마를 제시하고 이를 미끼로 배트맨을 유인하며 본인이 계획한 일의 결말을 구경하지만 배트맨에게 제압될 때까지 폭탄은 기동 되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에서 어둠으로 뒤덮인 세상에서도 타인을 생각하는 일말의 인간의 본성이 남아있음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믿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반 시민이 탄 배에서는 투표까지 하며 죄수인 그들보다 자신들의 목숨이 더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실제로 기동장치를 들어 동작시키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타인의 목숨이 자신의 손에 달려있다는 중압감에 다시 자리로 되돌아가 앉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죄수들이 탄 배에서도 그냥 죽을 수는 없다는 말에 이들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 건장한 죄수가 걸어와 그냥 자신이 빼앗았다는 말을 나중에 하라며 당신이 10분 전에 하지 못했던 일을 대신하겠다는 말로 장치를 기동하려는 듯한 뉘앙스를 보이지만 기동장치를 배 밖으로 던져버리며 타인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권한이 없고 누구 하나 가벼운 목숨이란 없다는 당연한 일로 고민하는 주위에 일침을 가하는 듯하였습니다.
왜 도망치는 거예요? "경찰이 쫓으니까"
죽은 하비의 고개를 돌려 온전한 모습 쪽으로 보여주면서 고담은 진정한 영웅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배트맨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도망치는 배트맨을 보며 고든의 아들은 자신을 살려주며 악을 처벌하는 정의라고 생각하는 그가 왜 도망치는 것인지 고든에게 물어보고 그는 경찰이 쫓기 때문이라는 말을 합니다. 잘못이나 죄를 지어서도 아니고 그저 경찰이 그를 쫓기 때문에 도망쳐야 한다는 아이러니함에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 한 마디가 떠올랐습니다.
“영웅으로 죽거나 끝까지 살아남아 악당이 되는 거지.”
수호자 다크나이트
경찰도 막지 못하는 범죄를 대신 막아주고 자신들의 실수와 과오마저도 모두 뒤집어쓰며 희생하는 배트맨을 보고 고든은 그를 고담시의 수호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장면을 보고 지금도 세상의 어둠과 맞서 싸우며 범죄를 방지하며 시민의 안전을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는 경찰관, 위험한 사고 현장에서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이는 소방관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배트맨처럼 실수하는 때도 있고 최선의 선택에도 모든 질타를 뒤집어쓸 때도 있지만 언제나 그들은 영웅이 되기보다는 수호자가 되는 것을 택했습니다. 영웅이 등장하는 흔한 영화와 달리 배트맨은 특수한 능력 없이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이러한 평범한 영웅, 숨어있는 의인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다크나이트 감상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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