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플레처의 “faster! faster!”라는 고함이 들리는 듯 “그만하면 잘했어.”라며 현실을 안주하려는 일상에 새로운 자극을 주입하는 영화 위플래쉬를 감상했습니다.
네 한계를 넘어!
점점 빨라지는 스네어 드럼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셰이퍼 음악학교의 앤드류 네이먼은 드럼 보조로서 자신의 실력에 위축되어 있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1학년 학생입니다. 연습 중인 그에게 갑자기 나타난 플레처 교수가 드럼 연주를 악평하더니 몇 가지 템포를 시킨 후 나가버립니다. 어느 날 합주 중 여느 때와 같이 혹평을 들으며 자리를 물러나야 했던 네이먼에게 플레처 교수는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자신의 밴드로 오라고 말합니다.
아침 6시까지 오라고 했던 그의 말과는 달리 밴드 합주는 9시였고 정각에 문을 열고 들어와 모두를 긴장시키는 플레처 교수가 영화의 제목인 위플래쉬라는 곡을 맞추어보자고 말하며 손짓을 시작하고 밴드가 함께 곡을 연주합니다. 조금만 흐트러져도 곡을 멈추고 실수를 한 사람에게 악평을 남기는 플레처 교수는 실수한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악기별로 테스트를 하다가 다른 사람의 실수였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없는 사람에게 악담을 퍼부으며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주눅이 들어 있는 네이먼에게 연주에서와는 달리 조언을 하며 자신감을 키워주려는 듯 인자한 웃음을 지어주는 플레처 교수였지만 다시 연주에 들어서자 악마와도 같은 행동과 악평으로 박자에 대해 소리를 지르며 네이먼의 가정사까지 밴드의 구성원들에게 까발립니다. 울먹거리는 네이먼에게 플레처 교수는 자신의 감정을 모두 토해내도록 명령하면서 지금 분한 감정을 느낀다면 죽도록 노력하라는 말을 남기고 버디 리치를 동경하여 음악인의 길을 생각했던 네이먼은 교수의 말처럼 음악에만 몰두하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합니다.
시간이 지난 후 재즈 경연 대회에 참가하게 된 플레처 교수와 밴드는 리허설을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을 때 메인 드러머가 네이먼에게 악보를 맡겼는데 한눈을 판 사이에 이를 잃어버리자 당황하게 되고 연주를 시작할 시간이 되어 자신은 악보 없이는 연주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반면에 네이먼은 악보를 통째로 외웠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자신 있게 말했고 플레처 교수도 네이먼에게 드럼을 맡겼습니다.
악보에만 신경 쓰며 조급하게 연주했던 전과는 달리 플레처 교수의 지휘에 집중하며 주위의 합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네이먼과 셰이퍼 음악학교는 대회에서 1등을 하고 결과적으로 플레처 교수는 네이먼을 메인 드러머로 인정합니다. 하지만 다음 연주할 곡인 캐러밴에서는 이전에 속해있던 밴드의 메인 드러머를 자신의 경쟁자라고 소개했고 자리에서 밀려버린 네이먼은 자신의 꿈을 위해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더욱 연습에만 몰두한다.
어느 날 합주실에 들어와 한 CD를 틀어주는 플레처 교수는 션 케이시라는 트럼펫 연주자의 연주를 들려주며 자신의 제자가 대성한 일화를 소개하고 사고로 전날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옛 제자를 추모하는 듯 처음 보는 감성적인 모습으로 함께 음악을 감상합니다. 따뜻했던 시간도 잠시 연주에 들어서자 자신의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드럼 연주자들에게 분노하며 박자를 맞추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드럼을 연주하게 명령하여 플레처 교수의 자극과 경쟁에 대한 투지로 네이먼은 다시 자신의 자리를 쟁취합니다.
캐러밴의 연주회 당일 지각을 피하려다가 드럼 스틱을 자동차 대여점에 실수로 놓고 와서 다시 가져오는 도중 자동차 사고를 당하게 된 네이먼은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무대에 오르기 위해 대회장으로 향했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내쫓겠다는 말과 함께 악담을 늘어놓던 플레처 교수도 네이먼의 상태를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온전치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네이먼은 연주를 망쳐버리고 난동을 피우다 끌려나간 이 사건으로 한 변호사가 션 케이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던 션 케이시는 불안과 우울증으로 자택에서 목을 매 사망했었다는 진실을 듣게 되는 네이먼은 변호사로부터 션이 플레처 교수를 만난 후 그러한 증상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을 듣게 되었고 그로부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가혹 행위가 있지 않았는지 물어보며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익명의 증언을 부탁한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션과 같은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자신을 걱정하는 아버지에게 자신은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며 결심한 듯 증언하였고 시간이 흐른 후 학교에서 제적당한 네이먼은 자신이 어렸을 적 드럼을 연주하는 것을 녹화한 비디오를 보며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어린 시절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음악을 포기하는 듯 음악과 관련된 물건을 정리합니다.
음악을 그만두고 몇 달 후 라이브 재즈 바에서 연주하는 플레처를 보게 된 네이먼을 그가 불러 세우고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션과 관련된 사건으로 학교를 그만둔 플레처는 프로 재즈 밴드의 지휘를 맡았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저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지휘가 아니라 제자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기를 바라며 열성적이었던 자신의 교육철학을 이해해주지 못한 이들이 아쉽다는 말을 들려줍니다.
“그만하면 잘했어.” 그렇게 넘어갔다면 최고의 뮤지션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것이야말로 엄청난 비극이라고 말하는 플레처는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고 해로운 말이 그것이라고. 네이먼에게 쏘아붙입니다. 자신이 극한으로 몰아가도 이겨내 대성할 자신만의 찰리 파커를 찾았으나 자신의 제자 중에서는 자신을 이겨낼 찰리 파커가 없었다며 아쉬워했고 자신과 다시 함께하기를 제안하는 플레처의 말에 네이먼은 창고에 처박아두었던 드럼을 다시 꺼냈습니다.
페스티벌 당일 수많은 관중이 모인 무대에 들어서는 네이먼이 연주할 것이라고 들었던 곡은 처음 플레처 교수와 인연을 만들어주었던 위플래쉬였지만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 플레처가 다가와 네가 증언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연습하지 못했던 다른 곡을 연주하겠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플레처 교수에게 당했다는 생각도 잠시 연주가 시작되어 변변찮은 연주도 해보지 못한 채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던 네이먼을 아버지는 말없이 안아주었습니다.
마음이 안정되자 굳은 결심을 하고 당당히 다시 자리에 돌아오는 네이먼은 관객들과 소통하려는 플레처의 말을 끊으며 막무가내로 연주를 시작했고 그의 신호에 맞추어 연주가 시작됩니다. 자신을 극한의 상태까지 몰아갔으며 자신의 자리를 쟁취했음에도 사고로 연주를 마칠 수 없었던 캐러밴을 연주하며 플레처의 악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연주를 즐기기 시작합니다.
플레처가 연주를 마무리 지어도 이에 굴하지 않고 연주를 계속하여 이례적인 그의 드럼 솔로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집니다. 가장 힘들게 느껴졌던 연주 부분에서 한계를 넘어 이겨낸 모습을 보여주자 이를 인정한 플레처도 네이먼의 신호를 맞추어 연주를 끝마치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교육자란 무엇인가
스네어 드럼을 점점 느리게 연주했다가 다시 빨라지는 부분에서는 마치 영화의 처음과도 같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이를 통해서 네이먼이 뮤지션으로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듯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 플레처가 바랐던 진정한 뮤지션이 된 네이먼을 의미하며 플레처의 지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밴드를 이끌어가는 마지막 곡의 장면에서 수동적인 밴드의 일원이 아닌 그토록 자신이 바라던 동경의 대상 버디 리치처럼 리더와 같아졌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야구계의 김성근 감독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저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투지와 열정을 가지라는 말을 하며 한계로 몰아가는 플레처와 같은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어쩌면 그의 철학이 닮아있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사람마다 조건이 다르고 환경이 다른데 자신의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모두에게 획일화시켜 적용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실제로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자신의 철학을 고집하며 현재 성장하고 있는 새싹들을 갈아버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수준이 아니더라도 제자의 의욕과 한계를 돌파할 마음가짐을 만드는 방법은 많을 것이고 이를 찾아내 개인에게 적용하기 위해 교육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자가 자신이 가진 이상향의 구성품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자신이 잘못했다면 이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교육자가 아닐까요?
그럼에도 이 영화가 주었던 자극은 “그만하면 잘했어.”라며 자신의 한계를 단정하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판에 박힌 일상 속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져서 작은 변화를 느끼더라도 적당히 넘어가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당히 넘어가고 싶을 때 최선을 다해 한 걸음 더 걸어보자는 새로운 자극제가 되었던 위플래쉬 감상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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