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확실한 속도의 스포츠
0.001 초의 아슬아슬한 차이까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스포츠 종목은 여러 빙상이나 썰매 종목, 경륜, 경마 등 많은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 시장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단연 포뮬러 원(F1)을 빼놓을 수 없다. 자그마한 사고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이 위험한 스포츠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외줄타기 레이스 F1
1976년 8월 독일 그랑프리가 열린 뉘르부르크링의 하늘은 잔뜩 흐리고 트랙에는 아직도 빗물이 고여있었다. 매년 20여 명의 드라이버가 출전하고 그 가운데 매년 평균적으로 2명이 사망하는 이 위험한 스포츠는 운전자가 어떤 수단이라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팀의 승리를 위해 속도와 연료, 엔진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여주는 포뮬러 원(F1)이다.
자신을 니키 라우다라고 소개하는 이 남자는 레이싱 팀 페라리의 소속으로 라이벌이라고 불리는 맥라렌 소속의 드라이버, 제임스 헌트를 바라본다. 한순간이라도 지기 싫었던 니키는 자신이 탄 차량의 타이어 마모도보다 헌트가 타이어를 교체하였는지를 더욱 중요시하며 이 어마어마한 승부욕이 두 사람의 치열했던 1976년 시즌의 F1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시간은 6년 전으로 돌아가 헌트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매력으로 여자들을 유혹하며 자신의 곁에서 맴도는 죽음을 부정하는 듯 그날 하루가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간다. 1970년 런던의 크리스탈 팰리스 경주장. 당시 F3 선수였던 헌트는 오늘도 자신이 꼬신 여자를 데려와 언젠가 자신이 꿈의 무대에 오르리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언제나처럼 경기를 앞둔 긴장감에 속을 게워낸다. 마침내 비장한 얼굴을 하고 운전할 차에 다가가는데 방송으로 울려 퍼지는 선수소개 가운데 니키 라우다라는 신인 한 명에게 시선이 머무르고 방탕한 자신과는 달리 새벽부터 트랙을 살폈다는 이 노력가에게 헌트는 관심이 생겼다.
경기가 시작되자 두 사람은 다른 차량과 월등한 차이를 벌리며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두 사람만의 레이싱을 계속하지만 완주까지 1바퀴를 남겨둔 상황에서 헌트가 무리하게 끼어들며 부딪쳤고 니키는 차에 문제가 생겨 경기를 포기하게 되었다. 결과는 헌트의 우승으로 끝나고 니키는 이를 따지기 위해 헌트를 찾았으나 오히려 돌아온 것은 헌트의 모욕적인 비웃음뿐이었다.
오스트리아 재력가 집안에서 가업을 이어 정치나 경제에 이름을 높이라는 집안 어른들의 충고에도 자신의 꿈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나간 니키는 오직 레이싱만을 위해 대출을 받아 BRM이라는 팀을 찾아간다. 자동차 정비에 직접 참여하며 니키는 자신의 이상적인 차를 만들어내었고 직접 정비에 참여한 정비공들과 레이서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그의 자동차는 결과를 만들어내며 자신과 동료들의 결실을 바탕으로 동료와 함께 페라리에 입단 후 팀 내의 자신의 입지를 다진다. 한편 헌트의 팀 역시 F1의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1975년 10월 뉴욕에서 열린 미국 그랑프리에서 대결을 시작한다. 엎치락뒤치락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마지막 바퀴를 향하는 순간 헌트의 차에 문제가 생겨 니키와 페라리가 우승을 차지하며 F1 세계 우승자의 명예를 얻었다.
늘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같은 조건이면 우승은 언제나 자신의 손에 있다고 여겼던 헌트는 이 일로 충격을 받았고 방탕했던 과거를 청산한 채 니키와 재대결할 것을 결심하였지만 후원사를 구하지 못하며 팀은 와해되었고 천문학적인 돈이 소요되는 F1의 무게를 실감했으며 마음을 다잡으려던 순간 찾아온 불행의 바람은 초조함의 풍선을 부풀렸고 음주에 빠진 헌트는 가정불화를 일으킨다.
한순간에 실력과 명성에 거품이 끼었다는 평가를 받게 된 헌트는 출전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해서 급하게 대신할 선수가 필요했던 맥라렌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 니키를 이길 수만 있다면 당신들이 바라는 모든 것을 해주겠다는 자신의 각오를 보여준다. 그리고 다음 해 챔피언의 영광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이 보여주는 승부의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과 이후의 간략한 이야기가 러시: 더 라이벌의 줄거리이다.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아찔함
실제 인물들이 겪었던 실화 바탕의 영화였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본 후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며 영화에서 있었던 장면과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전부터 F1이라는 스포츠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고 있었지만 시속 300km가 넘는 순간 가속과 수십 바퀴를 돌아야 하는 트랙, 한 해 동안 여러 그랑프리에서 얻은 점수를 합산하여 최고의 선수와 최고의 팀을 뽑는다는 간단한 정보는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사고로 누군가는 다시 운전대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충격도 다양한 영상들을 통해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이 깔린 트랙에 선수와 동료들은 당연하다는 듯 들어와서 아무렇지 않게 차를 정비하고 관객들은 그들이 보여주는 속도와 치열한 두뇌 싸움에 억눌려있던 아드레날린을 분출한다.
관심이 없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자동차를 타고 계속 같은 방향으로 뺑뺑 도는 것이 무슨 재미가 있는 것이냐 라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원초적인 속도를 보여주는 이면에는 날씨, 타이어, 같은 팀 선수 가운데 누가 뒤에 있는 차량을 블로킹하고 누가 먼저 달려갈 것인가 등 수많은 선택지와 관계자가 얽혀있는 전략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단순히 피트 인과 타이어 교체의 시기를 조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정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지만 F1의 가장 큰 묘미는 팀 우승과 개인 우승이 나뉘어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개인의 성적을 위해 무리를 하는 선수도 있고 팀의 승리를 위해 힘든 일을 떠맡는 선수도 있으며 기술진과 의견의 차이를 보이며 싸우는 선수도 있기에 볼거리가 풍성해지는 것이 F1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F1에서의 명승부는 여러 시즌, 여러 그랑프리마다 볼 수 있었고 0.5점 차이로 가장 차이가 적은 경쟁도 인기가 있었지만 니키와 헌트의 경쟁이 더욱 회자되는 이유는 이 시즌에서 보였던 특별함에 있다. 전 시즌의 우승자인 니키와 라이벌로 비견되는 헌트의 존재 이외에도 죽음에 이를 수 있었던 사고와 역경을 이겨낸 위기와 절정, 끝까지 승부를 알 수 없었던 결말까지 영화로 제작될 만큼의 서사가 있었기에 사람들은 이 이야기에 흥분하게 되는 것이다. 각 배우가 연기한 실제 인물의 성격도 열기를 끓어 올리는 계기가 되었는데 침착하고 꼼꼼하며 계획적인 니키와 자유분방하고 다혈질에 유연한 헌트의 정반대적인 성향이 부딪쳐 승부의 외적인 요소로 작용하였고 이들의 차이점만큼이나 광기에 가까운 승부에 대한 집착이라는 공통점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다.
라이벌은 가장 가까운 친구이다
시즌을 마친 헌트가 다시 방탕했던 과거로 돌아가 승자의 여운을 즐기던 중 어느 날 니키를 찾아가 그와 대화하고 서로의 존재가 자신들의 능력을 더욱 키우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승부욕과 다혈질에 치기 어렸던 과거의 자신들을 뒤로한 채 서로를 챔피언이라고 인정하며 헤어질 때는 라이벌의 존재가 경쟁하는 대상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독점, 절대권력, 무패의 신화 등은 절대자 1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이들에 대한 감탄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항상 생각나는 것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서로의 승부욕이나 욕망을 부추길 수 있는 대상이 있었더라면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퍼포먼스와 영광을 보여주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마치며 니키의 내레이션은 두 챔피언의 행보를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니키는 이후에도 레이싱을 계속하여 다시 챔피언이 되었고 다른 길을 걸었던 헌트는 은퇴 후 방송인이 되었다. 헌트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살아갔고 그에게 바라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으며 니키는 자신과 다른 길로 떠난 그의 삶을 존중하고 그저 라이벌이자 좋아하고 존경했으며 때로는 부러워하기도 했던 친구를 그리워하는데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눈에 불을 켜고 싸웠음에도 나와 다른 가치를 가진 친구의 삶 그 자체를 인정하며 추억하는 니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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