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ㆍ애니 감상문

자신을 되돌아보는 나만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자. 리스본행 야간열차 감상문

by 망상바드 2024. 8. 31.

감상문 한 줄 정리

누군가가 남긴 자신의 일부를 통해 현재의 가치와 나를 되돌아보는 경험을 이야기하는 리스본행 야간열차 감상문.

 

리스본행 야간열차 포스터

 

무작정 떠난 리스본에서 얻은 가치

스위스의 베른, 수많은 책과 서류 가운데 정신없이 살아가는 남자 그레고리우스는 어느 날 다리 위에서 모든 희망을 잃은 듯 몸을 던지려던 한 여성을 발견하고는 그녀의 극단적 선택을 온 몸을 던져 막는다. 그녀를 구하며 쏟아진 서류를 주섬주섬 챙기는 그레고리우스에게 여자가 따라가도 되겠느냐 묻자 그레고리우스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이를 허락한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직에 몸담고 있었으며 수업에 들어가 자신을 따라온 여자를 학생들에게 소개하는데 수업을 시작하자 갑자기 밖으로 나가버리는 그녀를 잠시 쳐다보던 그레고리우스는 이내 수업을 다시 이어나간다. 하지만 조금 전 그녀가 택하려던 선택이 마음에 걸려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고 창밖으로 멀리 떠나는 것을 발견한 뒤 그녀가 남긴 붉은 재킷을 들고 혹시나 위험한 생각을 다시 하지는 않았는지 걱정하며 학생들을 내버려 둔 채 급하게 뛰쳐나갔다.

 

잠시밖에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발자취에 고민하던 그레고리우스는 재킷에서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발견하며 책을 구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점으로 향한다. 책에 관해 물어보는 그레고리우스에게 서점 주인은 어제 포르투갈 서적을 찾고 있었다는 여자의 정보를 알려주었고 이와 동시에 책에서 떨어진 리스본행 기차표를 챙긴 그레고리우스는 곧바로 역으로 떠났으나 잠시 후 출발할 열차에도 그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움직이기 시작한 열차를 보던 그레고리우스는 홀린 듯이 기차에 탑승하였고 다음 날 리스본에 도착한 뒤 여자가 남긴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단서 삼아 동분서주한다. 처음에는 여자에 대한 호기심에 움직인 그였으나 책에 적힌 구절을 읽어가며 책의 저자 아마데우 프라두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레고리우스는 그간 자신을 억누르던 모든 현실을 던져버린 채 처음으로 무작정 떠난 리스본행 여행길에서 무엇인가의 가치를 느낀다. 그리고 그에게 여러 가지 영감을 전하는 아마데우 프라두의 족적을 따라 리스본을 배회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감상문 썸네일

 

현재의 가치

이 작품에서 현재라는 순간은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다. 작중 등장하는 아마데우 프라두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를 통해 그레고리우스가 지금껏 희미하고 지루하게 보내던 현재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기 때문이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 언제나 찾아올 수 있으나 그러한 영향력을 가진 이벤트가 항상 요란하게 벌어지지는 않는다는 이 책의 가르침 역시 그레고리우스의 갑작스러운 리스본행을 결정지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현재는 과거를 되돌아보기 위한 여정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아마데우는 그의 책에서 사람이 어떠한 공간을 떠날 때 자신의 일부를 남기고 떠난다고 말하며 그 장소라는 공간을 떠날 뿐 그곳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남아있는 자신의 일부를 통해 특별한 장소에 다시 찾아가 과거를 되돌아보는 여정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아마데우가 남긴 자신의 일부,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은 실제로 그레고리우스에게 깊은 감명을 남겼으며 아마데우 본인에게 특별한 장소, 특별한 사람을 찾아가는 그레고리우스에게 그 여정의 길이와는 상관없이 어떠한 삶의 가치를 계속해서 제공한다.

 

아마데우의 병은 그를 삶의 충실함과 죽음의 두려움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게 하였으며 신이 약속한 영생이나 성직자들의 말을 공허한 외침일 뿐이라고 느끼게 한 회의감은 현재라는 순간이 더욱 빛나도록 그가 집중하게 되었던 계기였을지 모른다. 언제나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아마데우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방향성은 그가 현재의 삶을 더욱 충실하고 가치있게 보내려 노력하는 요소였다.

 

그는 소중한 현재 가운데 우연이라는 작은 소용돌이를 인생의 진정한 감독이라고 표현하며 앞서 말했듯 삶의 결정적인 순간이 이러한 작은 소용돌이에 의하여 결정될 수 있음을 말하였다. 갑작스럽게 결정한 리스본행과 긴 밤을 거쳐 다시 햇빛을 보게 되는 야간열차의 특징은 그레고리우스에게 우연이라는 작은 소용돌이 속에서 긴 시간을 되돌아가 아마데우가 남긴 그 자신의 일부인 사상, 인간관계 등을 느끼고 그레고리우스가 자신의 삶 역시도 되돌아보게끔 인도한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핵심 등장인물인 아마데우를 지켜보면 ‘노킹 온 헤븐스 도어’라는 작품의 두 주인공이 느끼는 삶의 가치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은 모두 생명의 불이 언제 사그라질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현재의 가치와 활력이 충만한 삶에 대한 동경을 남은 인생의 지향점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저 관찰자로서 끊임없이 발버둥을 치는 두 사람을 지켜볼 뿐인 ‘노킹 온 헤븐스 도어’와 이 작품의 차이점은 관객의 감정을 이입할 그레고리우스라는 인물을 통해 그의 시선과 행동, 여정을 따라 조금씩 아마데우가 말하고자 하였던 그 가치에 동화되도록 유도하는 연출이다.

 

그리고 그러한 연출은 ‘현재의 삶이라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가치에 충실하라.’라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방향성에 더하여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과거를 되돌아보는 여정의 출발점으로서의 현재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우리 안에 있는 것 중 작은 부분만을 경험한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책 속의 구절처럼 일상을 지나고 세월이 흐르며 우리는 수없이 경험한 여러 가치 가운데에서도 작은 일부분만을 다시금 꺼내어 활용한다. 아마데우의 발자취를 그레고리우스와 함께 걸으며 현재의 자신에서 점차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지났던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고 그 모든 순간순간을 지나친 자신이 잠시 잊어버렸던 본인만의 가치를 떠올리는 성찰과 성장의 시간이 이 작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요소였다.

 

그레고리우스가 새로 안경을 맞추었음에도 이전에 쓰던 깨진 안경을 다시 써보는 장면이나 교장으로부터의 전화에 자신의 결정을 유보하는 태도, 지난 며칠의 활력과 강렬함이 충만한 삶에도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려 고민하는 모습에서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내면의 갈등을 느끼고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그 나름대로 결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지막 순간 그를 붙잡는 새로운 강렬함의 여운은 과연 그의 선택이 리스본행 열차에서 느낀 현재의 가치에 바탕을 두었는지 아니면 현실을 자각하며 그가 말했듯 지루한 본래의 삶으로 향하였는지 그저 상상할 뿐이지만 일상에 지쳐 나를 되돌아볼 기회가 없었다면 나만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 과거를 되돌아보는 여정을 거쳐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