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한 줄 정리
위치를 사수하기도 쉽지 않은 베트남 험지에 투입된 지휘관이 전장에서 느낀 책임감과 생생한 현장을 전달하는 종군기자의 이야기 위 워 솔저스 감상문.
나를 지켜주는 전우, 내가 지켜주는 전우
이 영화는 1965년 베트남의 이아드랑 계곡에서 실제로 있었던 참혹한 전투의 현장을 모티브로 해당 전투에서 죽은 젊은 미군과 베트남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기록되었다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군사력에도 베트남 현지에서 되돌아오는 연이은 패전 소식에 백악관은 조급함을 느끼며 그동안 쌓아 올린 기술과 전략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험지를 정복하고자 마침내 그들은 헬기를 활용한 작전을 결정하였고 이를 지휘할 적임자로 할 무어 중령을 선택한다.
베테랑인 그 역시도 적진 깊숙이 침투하는 이번 작전의 위험성을 인지하며 자신이 구상하는 작전을 수행할 젊고 유능한 부하들을 단기간에 최정예로 육성하기 위해 자신만의 훈련 방법을 시도한다. 그의 훈련 방법은 얼핏 보면 다른 이들과 다를 것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점은 항상 상황을 부여하고 부하들에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그 판단능력을 기르는 것이 달랐다. 그가 이러한 훈련을 적용한 이유는 일분일초가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치열한 현장에서 지휘관뿐 아니라 모두가 변수를 헤쳐나가기 위해 상황판단능력이라는 요소를 필수적으로 길러 본인과 전우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임무의 성공과 이어진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었다.
한편 부하들에게는 호랑이처럼 엄해 보이는 할 무어 중령도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는 다정한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아이들의 말을 유심히 들어주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존중하며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감사하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때로는 신에게 가르침을 구하며 분명 평화로운 일상이었다면 누렸을 그의 일면과 소중한 가족에게 다시 돌아오기 위해 할 무어 중령은 과거 현지의 전투 기록 등을 살펴보곤 절대로 방심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으나 점점 작전을 위한 시간은 다가오고 전투 경험이 미숙한 부하들을 향한 걱정에 할 무어 중령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야속하게도 약속된 날짜가 찾아오자 할 무어 중령과 그가 이끄는 용사들은 자신의 불안을 애써 감추며 가족들을 안심시킨 뒤 언제 돌아올지 기약이 없는 미지의 험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작전지역 베트남에서 첫 임무로 규모조차 알 수 없는 적들을 상대하게 되는데 작전을 시작한 미군을 맞이하듯 적들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끊임없는 적들의 움직임을 막아내면서도 상대편의 속셈을 파악한 할 무어 중령은 전략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하였고 치열한 싸움은 첫날임에도 이미 오랫동안 고착상태를 유지하는 전선처럼 큰 소득이 보이지 않았다.
한편 조 갤러웨이는 이러한 전쟁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할 무어 중령이 있는 작전지역으로 누구보다 먼저 자진해서 찾아온 종군기자였다. 직접 전쟁이라는 충격을 몸으로 겪으며 조 갤러웨이는 거대한 폭풍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였으나 그는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이곳에 왔다고 말한다. 할 무어 중령은 적들의 공세에 작전지역 내 아군의 위치를 사수하는 것만으로도 고군분투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치기 어린 호기심에 전장으로 향한 것처럼 보이는 조 갤러웨이의 무모함에 크게 관심이 없었으나 그의 부하들처럼 부디 소중한 목숨을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그칠 줄 모르는 적의 공격으로 할 무어 중령의 부하들은 적진 한가운데 고립되었고 아군으로부터의 보급 또한 여의치 않았다. 가라앉은 분위기와 부하들의 사기를 높이고자 그는 부하들을 찾아가 격려하며 하룻밤을 무사히 넘겼으나 이튿날 그리고 다음날은 적들의 공세가 더욱 거세졌다. 미군의 방어선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하며 기자인 갤러웨이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두가 전장의 군인이 되어야만 하는 공포 때문에 총을 들기도 하지만 이내 그는 자신의 결의를 다지며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리곤 다시 카메라를 들어 용사들이 간신히 버티는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으며 그들이 전우라는 이름으로 뭉쳤던 3일 동안의 기록을 담아낸다.
호국보훈의 달
이 글을 쓰는 6월은 현충일과 한국전쟁의 의미, 호국의 용기를 품고 쓰러진 선배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생각하게 되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라는 꽃이 싹트기 위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야 함에도 일상을 살다 보면 잠시 희미하게 잊어가다가 유독 6월이 되면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과 감사함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나라를 수호하는 호국과 그 공로에 보답하는 보훈의 의미를 올바르게 느끼기 위해 우리는 어떤 것을 해야 할까? 거창하게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점은 그들 역시 우리 주위의 이웃들처럼 누군가의 부모, 배우자, 형제, 자녀였음을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갔던 용기와 고통 속에서도 다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땀 흘린 노력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참전 용사와 군인들에게 그들의 헌신에 감사한다는 의미로 'Thank you for your service.'라는 말을 하는 등 군인을 대할 때 그들의 노력에 감사함과 존중을 보여주는 것이 당연한 나라가 되었으나 그런 미국 역시도 작품 속 시대에는 아직 그러한 헌신에 따른 보답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인종차별, 전사자와 유가족에 대한 대우 등 비록 그들이 국가의 부름을 받아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국가에 헌신하고 노력하였다면 그 고생에 대한 감사와 보상이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그리고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더욱 성장하고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경제의 성장만을 바라보는 것보다 현재 대한민국의 기반을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한 사람들에게 합당한 대우와 보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이 작품을 보며 느꼈다.
비뚤어진 생각으로 복무하는 이들에게 앙심을 품거나 조롱하는 소수는 누군가의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평화를 당연하게 생각하여 감사함을 느끼지 않고 자신과 상관없다는 방식으로 아무렇게나 말하여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상대방이 정말 나의 가족, 나의 이웃이나 친구였다면 똑같이 말할 수 있는지 그들은 먼저 돌아보아야 하고 지금 누리는 평화가 당연하지 않다는 인식의 변화를 국가가 지속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이 이러한 전쟁과 관련된 영화를 보며 느꼈던 안타까움이었다. 이와 더불어 자신의 의지로 군인의 길을 걸어가는 직업 군인에 대한 국가적인 대우가 열악하여 점점 간부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는데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 열악한데 의무라는 이름으로 가게 된 이들에 대한 인식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는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졌으며 한쪽 어깨에 태극기를 달아 국가대표와 다름없다는 무게감을 강조할 것이라면 국가대표의 대우가 뒤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전우
군가 중 전우라는 곡은 국가의 부름을 받아 조국을 지키는 보람을 느끼며 주변에 있는 전우와 함께 젊음을 불태워 헌신하겠다는 각오를 표현한 노래이다. 전우라는 공동체를 강조하는 이 노래는 작품을 보면서 특히나 의미 있게 다가왔는데 할 무어 중령이 신입 장교들을 교육할 때 들려준 어느 부족의 이야기나 그가 부하들에게 어떤 상관, 어떤 지휘관이었는지 지켜보면서 전우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이 단순히 전쟁터에서 함께 임무 완수와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소속 부대의 의미를 넘어 같은 처지나 운명에서 공동의 목표에 초점을 맞추는 공동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할 무어 중령이 부하들을 자신의 진급이나 훈장을 위한 도구로 보지 않았고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부하들 역시 할 무어 중령이 가르치고자 하였던 전우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닫는 장면이나 그가 항상 언급하였던 것처럼 상하관계에 상관없이 함께 살아남기 위해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전장에서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관계가 전우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목숨을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이라는 같은 처지에 그들 사이에는 인종이나 신분, 계급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그저 전우라는 단어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외부인이자 그저 관객에 불과한 본인이 보기에도 느껴질 만큼 이 작품은 강조하였다.
가족을 전쟁터로 보내고 남은 사람들 역시 하루도 편안할 날 없이 걱정과 시름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을 이 영화는 보여주었다. 아내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의 생사에 혹 사망 소식이 들려오지는 않을지 불안에 휩싸여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모습에서는 국가와 지휘관을 원망할 자격이 있는 유가족이 자신들이 보내준, 큰 과업을 위해 떠난 그들의 각오를 존중하며 보이지 않는 전우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패한 전쟁
일부 전문가들은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실패했다고 말하며 큰 명분이 없이 원하는 소득을 얻지도 못한 패배라고 말하기도 한다. 북베트남의 공산주의로 인해 주변 국가들에 사상이 퍼질 것을 우려한 미국이 처음에는 남베트남을 원조하며 지켜볼 뿐이었으나 직접 개입까지 하면서도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북베트남에서 많은 희생을 치렀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목표를 이룬 성과라고 평가를 받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작품 속에서도 적 지휘관의 '미국이 전투에서 이겼다고 판단하여 전쟁이 계속한다면 그저 얼마나 더 많은 사망자를 만들어내는 것인지의 문제일 뿐'이라는 대사와 참상의 비극을 통감하는 장면 그리고 할 무어 중령이 조 갤러웨이에게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고 책임감을 느끼는 장면은 수많은 젊은 목숨이 몇몇 사람들의 결정에 의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허망함과 전쟁의 폭력성을 보여주었다.
보통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는 주인공이 속한 나라 즉 자국을 정의의 편으로 적들을 악역으로 묘사하는데 이 영화는 달랐다. 소중한 사람의 사진을 가슴에 품은 채 뛰어드는 베트남 군인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양측의 두 지휘관이 하늘에 뜬 달을 지켜보는 장면은 양국 간의 이념이나 욕심 등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 아무 의미 없는 전쟁으로 쓰러지는 젊은이들에게는 아무런 선, 악도 정의와 타락도 없이 모두가 평등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와 아무런 의미 없는 폭력으로 소중한 가족을 잃는 남은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표현하였다고 생각한다.
조 갤러웨이에게 직접 느낀 참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라고, 그리고 그 장면 속에서 자신의 부하들이 어떻게 숨을 거두게 되었으며 지키고자 하였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상세하게 적으라고 말하는 할 무어 중령을 보고 책임감을 느끼며 이러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끄는 리더이자 수많은 목숨을 짊어지고 작전을 실행하는 지휘관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던 그리고 피 흘려 값진 평화를 만들어낸 이들을 그리고 그들의 삶과 용기를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느낄 수 있었던 ‘위 워 솔저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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