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한 줄 정리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30년이나 우승하지 못했던 어느 축구팀의 부활과 언제나 그들 곁을 지켰던 팬들 그리고 변화를 만들어 낸 감독의 이야기인 리버풀 FC : 엔드 오브 스톰 감상문.
이 팀이 다시 우승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영화를 시작하며 리버풀 FC의 위르겐 클롭 감독은 인터뷰에서 스스로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지도 않고 세계 최고의 전문가도 아니며 세상 제일가는 미남이나 경력이 유달리 튀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모자란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자신의 출발점이 다를 뿐이며 출발점보다 도약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클롭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은 그에게는 언제나 옆에서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 친구, 가족이 있었기에 그러한 도약이 가능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노래를 이야기하는데 이제는 정말 좋아하게 된 그들의 주제가 ‘You'll Never Walk Alone(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으리)’ 때문에 리버풀에 온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그리고 순전히 우연에 의하여 이 노래는 오랫동안 그의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리버풀 FC가 맞닥뜨린 폭풍의 존재는 길고 긴 암흑기였다. 최고의 리그에서 넘보기 힘든 우승 기록을 써 내려가며 그들은 빛나는 왕관이 언제나 자신들의 손에 있으리라 생각하였고 잠시 주춤하여도 금방 다시 이전과 같이 돌아와 팬들에게 이를 뽐낼 것이라는 기대로 과거에 얽매여 끝이 보이지 않은 침체기에 들어섰다. 여러 감독이 교체되고 선수들의 영입과 방출이 계속되며 리버풀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모두가 의문을 가지던 그때 한 명의 감독이 새로이 지휘봉을 잡게 되는데 그는 직전 분데스리가에서 도르트문트라는 팀을 우승까지 이끌었던 위르겐 클롭이었다. 클롭이 부임하고 명확하게 지켜본 팀 내부 상황은 처참했다. 만족스럽지 않은 선수들, 과거에만 매달려 다시 우승할 수 있겠냐는 기자들, 더 우승이 가까운 팀으로 떠나기 위해 거치는 팀이 되어버린 클럽의 위상 등 클롭 감독은 과거는 과거의 추억일 뿐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한다고 단언하며 30여 년이나 무너질 대로 무너진 팀에게 다시 우승의 기쁨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2015년 10월 시작된 이 이야기는 영국의 치열한 프리미어 리그에서 과연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을지 수많은 사람에게 기대와 불안을 함께 주었던 어느 클럽의 부활을 다룬다. 다시 인터뷰로 돌아와 클롭 감독은 인생에서 가장 우선시하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만족을 이곳에서만큼은 내려놓았어야 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팬들의 기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승이라는 업적과 그에 걸맞은 트로피를 따내야만 했으나 첫 경기부터 모든 것이 그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클롭 감독은 자신과 그의 선수들을 위해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고심하는데 스스로 통제에 미쳐 다른 사람을 구속하고 강박에 시달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새로 부임한 감독으로서 일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절차의 필요성을 생각했다는 그는 좋은 선수를 영입하며 그가 꿈꾸는 팀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2016년부터 꾸준히 좋은 선수의 영입과 자신의 색깔에 어울리는 기존 선수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며 클롭 감독은 팀에 어떠한 사상을 하나 새겨놓는데 이는 팀 전체가 우승에 대한 열망을 가지도록 젖 먹던 힘까지 다하고 난 후에도 만족하지 않고 계속 전진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점차 변화하는 리버풀은 2019년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며 유럽 최고의 팀들 사이에서 아직 자신들이 건재하다는 사실과 탐욕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우승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었으나 그들은 아직 만족하지 않았다. 지난 30년간 다가갈 수 없었던 리그 우승에 대한 열정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 이제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그 결과를 보여준다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했다.
19-20 시즌이 시작되자 전 세계의 리버풀 팬들은 그들이 보여준 성과에 기대하며 그동안 우승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아쉽게 좌절해야만 했던 그들이 이번에야말로 리그 우승을 거머쥘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진 채 경기장, 술집, 집 등에서 응원가를 통해 가족 및 친구들과 열기를 끌어올렸고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경기장에 입장한 선수들의 심장 역시 뜨거워졌다. 팬들의 기대에 보답하듯 선수들과 클롭 감독의 전략은 적중하였고 기분 좋게 시작한 기세는 이제 흐름이 되어 파죽지세의 리버풀을 막을 적수가 없을 것 같았으나 그들을 막아선 것은 다른 리그의 강팀이나 부상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던 코로나바이러스였다.
사그라들 줄 모르는 세계적인 위협 앞에서 리그는 연기되었으며 타국에서는 불안과 공포로 모든 경기를 취소하기에 이르자 이는 리버풀 선수들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쳐 어쩌면 생에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허무하게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빠질 수도 있었으나 위기는 그들의 결속력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는 계기가 되어 리버풀이라는 커뮤니티는 변화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마침내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나 2020년 5월 28일 축구는 다시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비록 이전과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고 또 달라져야만 했으나 바뀌지 않은 것은 언제나 그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그 자리를 지켰던 클럽 리버풀 FC와 팬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관중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을 수 없었고 팬들은 기대하는 선수들의 활약을 영상으로밖에 볼 수 없었으나 우승이라는 기대 앞에서 팬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선수들과 이어졌다는 마음의 표시를 하였고 선수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플레이로 이에 보답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리버풀의 우승이 결정되자 그들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며 30년 만에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고 클롭 감독은 지금은 비어있는 관중석을 향해 여러분의 응원 덕분에 이룰 수 있었다고, 언젠가 그들과 함께 또 이런 영광을 누리리라고 다짐한다.
You'll never walk alone.
You'll never walk alone이라는 노래가 주는 여운은 단순히 한 축구팀의 주제가라는 영역을 넘어서 사람의 인생과 비전에 영향을 준다. 인생이라는 앞이 보이지 않는 폭풍 속을 걸어갈 때 우리는 클롭 감독이 말했듯이 넘어지지 않기 위해 지탱할 무엇인가를 찾으며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에 두려워 움츠러들어 방황하기도 한다. 고개를 들어 폭풍을 넘어 밖으로 빠져나간 뒤에는 환하게 나를 감싸주는 황금빛 하늘이 기다리고 있으나 우리는 내가 지금 넘어졌다는 사실에 빠져 혹은 걸어온 길을 의심하며 계속 앞으로 걸어가기를 망설이기도 한다.
그때 만약 함께 걸어갈 동료가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함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동료가 옆에서 언제나 곁에 있을 것이라고, 절대 혼자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다면 혼자 걸을 때보다 불안은 내려가고 오히려 약간의 안도감과 함께 어쩌면 마음속에서 싹튼 희망으로 걸음을 앞으로 계속 옮길 수 있을 것이다. 리버풀 FC라는 팀이 길고 긴 암흑기와 비운의 사고로 인한 슬픔에도 무너지지 않고 어떻게든 다시 앞으로 걸어갔던 원동력은 바로 이 노래처럼 클럽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기꺼이 함께 폭풍 속에서 걸어갔던 팬들의 존재였다. 동료들의 활약으로 기분 좋은 시즌의 시작을 알렸던 당시를 떠올린 알리송이 골키퍼로서 동료의 득점에 홀로 축하해야 하는 외로운 위치에 있었다고 회상하지만 그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함께 기뻐하는 팬들의 존재는 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특별한 힘을 불어넣었다.
감독으로서의 클롭 역시 이 노래가 자신의 주제가라고 생각할 만큼 팬의 존재와 선수의 성장을 자신이 직접 함께 걸으며 느꼈다는 것처럼 말하는데 마치 가족과도 같은 그들의 응원에 감사하며 누군가의 기대 속에서 함께 걸어갈 존재가 있다는 안도감이 그를 한 층 더 도약하도록 이끌었다. 경기 중 그를 유심히 지켜보면 상당히 격하게 움직이며 시시각각 전술을 수정하고 팀이 골을 넣었을 때 과도한 액션으로 팬들의 분위기를 더욱 끌어올려 기쁨을 함께 나누는 모습이 신뢰와 사랑을 받게 되는 이유였을 것이다.
또 인터뷰에서 냉소적이거나 거칠게 말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는 듯 또박또박 기자들의 말에 반박할 때는 그가 그리는 판에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져 그가 아끼는 선수들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누군가 지키지 않았을 때 침울한 선수의 곁에 언제나 자신이 있다는 외침과도 같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행동에 영향을 받은 아놀드나 헨더슨 같은 선수들의 선수뿐 아니라 인격적인 성장도 영향을 미쳐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생긴 자신감이 경기장 안팎에서 동료들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누군가 실수를 하게 되더라도 언제나 동료들이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은 바로 리버풀이라는 팀이 개인의 활약에 의지하는 팀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혼자 걷지 않고 팀 전체가 함께 싸우는 팀이 되었음을 의미하였다.
지난 5월 20일에 있었던 23-24 프리미어 리그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클롭 감독은 리버풀이라는 팀을 스스로 떠났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9년 동안 팀을 이끌며 이제는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했다는 듯 지친 클롭 감독의 마지막 경기에서 팬들이 그의 이름과 ‘You'll never walk alone’이라는 말을 연호하며 팀을 위해 헌신한 위대한 감독에 대한 사랑과 언제나 그를 기억하고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이 작품의 제목처럼 길고 긴 폭풍을 지나온 것과 같은 리버풀 FC와 클롭 감독의 여정은 마침내 목표를 이루었으나 그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또다시 끝없는 폭풍 속으로 뛰어들어가 각자의 위치에서 더 크고 빛나는 영광을 위해 계속 전진할 것이며 팬들은 그들의 의지와 새로운 도전을 곁에서 함께 걸으며 기대할 것이다.
영화에서도 드러났듯이 세계적인 질병과 맞서며 우리의 일상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고 또 이에 적응해야만 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공포에도 단계적 일상 회복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이 노래처럼 힘들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혼자 걷지 않는다는 서로를 위한 수많은 작은 포옹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새롭게 우리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함께 걸어가야 한다고 느꼈던 리버풀 FC : 엔드 오브 스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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