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한 줄 정리
내가 믿었던 세상이 과연 진짜일까? 가상세계를 통한 인간 심리와 윤리를 보여준 영화 13층 감상문.
나는 지금 살아있는가?
풀러는 최근 알아낸 진실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모르는 게 약이라고 느껴지는 순간도 있으며 현재 자신의 처지가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알아낸 진실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적는 동안 차라리 이를 몰랐다면 그의 운명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고, 결국 비밀을 알아낸 자신에게 남은 미래는 죽음뿐이라는 직감을 느꼈고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더라도 자신이 남긴 단서를 이해하여 진실에 다가갈 신뢰하는 동료 더글라스에게 편지를 남긴다. 이후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하자 눈에서 묘한 빛이 일렁거리며 다른 공간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거대한 컴퓨터로 둘러싸인 장소에서 빠져나온 뒤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 서둘러 건물 밖의 한 술집에 들어간다. 잠시 후 더글라스에게 전화를 걸어 비밀스러운 진실에 도달할 정보를 주려던 그의 통화는 출입구 밖에서 그를 불러내는 누군가에 의해 도중에 마무리되었고 풀러를 불러낸 신원미상의 인물은 면식이 있는 사람인 듯 반갑게 맞이하는 그를 수차례 찌르며 잔인하게 살해한다.
한편 아침이 되자 깨어난 더글라스는 세면대에서 핏자국과 피 묻은 셔츠를 발견한 뒤 혼란스러워하다가 경찰로부터 전화를 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듣고 영문도 모른 채 자신에게 연락한 멕베인 형사를 찾아간다. 곧이어 풀러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 그는 지난 6년간 함께 일했던 동료이자 친구의 비보에 슬픈 감정을 삼키지만 아무런 친척도 없었고 그가 복용하던 약의 비상 연락처마저 더글라스였던 점과 그가 풀러의 유산 상속인이 되었기 때문에 멕베인 형사가 알리바이가 없는 그를 의심하자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풀러의 행적과 그가 남긴 단서를 확인하기 위해 풀러의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인기척을 느끼고 스스로 풀러의 딸 제인이라고 소개하는 어떤 여성을 발견한다. 처음 알게 된 그녀의 존재와 왠지 모르게 낯익은 분위기, 전혀 만난 적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그녀의 태도에 더글라스는 수상함을 느끼면서도 멕베인의 탐문을 위해 자리를 비켜줄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을 남겨둔 채 도착한 13층에서 더글라스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동료 휘트니를 만나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풀러에게 어떠한 사정이 있었는지, 실험 단계의 프로그램을 수없이 접속하며 자신들에게 비밀로 하였던 모험을 확인하자 당혹감과 배신감을 느낀다. 이에 제인이 풀러의 죽음과 관련이 있으며 자신의 의심을 해결할 실마리일 것이라 고민하던 더글라스는 잠시 뒤 건물을 떠나는 제인의 뒤를 쫓았고 그녀를 따라간 그의 의심은 점점 더 깊어졌다. 물론 풀러의 유산을 상속받게 된 더글라스 역시 멕베인 형사의 의심을 피할 수 없었는데 분명 풀러가 메시지를 보냈던 기록이 있었음에도 이를 기억하지 못하자 더글라스도 스스로 혼란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고 집으로 돌아와 삭제된 메시지를 복구하여 지난밤 긴급하게 풀러가 연락하였던 메시지를 듣게 된다. 메시지를 듣게 된 더글라스는 죽음을 직감했던 풀러의 흔적을 따라 그가 남긴 비밀을 쫓기 위해 13층의 작업실에서 풀러의 파일에 접속하며 진실을 마주한다.
13층의 의미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13이라는 숫자의 중요성은 그 상징성과 궤를 같이한다. 공포 혹은 스릴러 영화의 단골 소재로 이용되었던 13일의 금요일이 가지는 파괴의 의미는 잔혹하고 파멸을 부르는 주인공의 이미지로 소비되며 다른 이들에게 어떠한 행동을 강요한다. 그리고 이는 작품에서 내키는 대로 행동하였던 데이빗이나 애쉬톤으로 비추어져 프로그램으로 짜인 가상세계의 주민들이 자신의 의지를 상실하게 만들거나 그들에게 가하던 폭력이 결국 13층에서 벗어나지 못한 애쉬톤이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데이빗으로 표현되어 자신이 저지르려던 파멸에 오히려 잡아먹히는 클리셰를 보여주었다.
또 시간이나 방위 등에서 조화롭지 못한 숫자인 13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는 조화롭고 이상적이며 체계적인 숫자의 세계에서 이질적인 존재를 의미하는데 진실을 알게 된 풀러나 더글라스 등의 인물이 바로 그 이질적인 존재들이고 이들이 모인 공간을 13층으로 설정하며 그들이 조화로웠던 세상을 뒤흔들게 되는 일종의 버그처럼 여겨지도록 보여주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설정이 중요하다는 점은 앞서 말했던 조화롭지 못한 13의 의미 이외에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데 우리가 13시를 오후 1시라고 받아들이며 이는 12시라는 분기점을 지나 새로운 1이라고 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핵심인물들 모두 12시라는 분기점을 각자가 지났고 그 분기점에서 어떠한 행동을 선택하였는지에 따라 새로운 시작이자 무한의 굴레인 1시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 혹은 12에서 그저 13으로 머무르는 선택을 하였는지 아니면 그 선택에 이르지도 못하고 사라졌는지 이를 비교해 보는 각자의 순간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내가 믿는 것이 진실일까?
앨빈 토플러가 주장하였던 물결 이론을 넘어 이제는 물결이 아닌 홍수나 바다의 수준이 되어버린 방대한 정보의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이 작품은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가상세계의 주민들은 매우 체계적이고 짜임새가 있는 각자의 설정대로 움직이며 주어진 세상 속에서 주어진 일상을 살아가는데 만족하고 이를 벗어난다는 발상을 떠올리지 못한다.
마치 가짜 뉴스가 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너무나 많은 정보에 떠밀려 정확한 진위를 판별하지 못하고 그저 스크린과 미디어에 노출되는 정보를 수용하기에 바쁜 현대 사회의 우리를 풍자하는 듯 때로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좋은 세상인 것처럼 꾸며진 사회에 세뇌당하는 이들의 대한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나의 의견을 말하기보다 여론에 흘러가는 무리 가운데 한 명이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저 흐름에 몸을 맡겨 진실의 여부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게 되어버렸다.
우리는 진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 작품을 보고 내가 믿는 것이 진실인지 고찰한 뒤에는 주인공인 더글라스와 나중에 밝혀지는 데이빗의 존재로 내가 진짜 나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거나 때로는 아첨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지위나 그동안 보여주었던 이미지로 인해 사회적인 가면을 쓰고 이상적인 나를 연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는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연기한 이상적인 자신과 나만이 알고 있는 실제 나 사이의 괴리감은 언젠가 순수하고 다정했던 모습을 잃어버린 채 내면의 잠재된 폭력을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가하며 상처를 입히는 데이빗처럼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을 작품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진실을 알게 된 멕베인 형사는 제인에게 자신들을 그저 내버려 두라고 말하는데 이 작품의 핵심요소이면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데이터 인격체는 과연 인위적으로 이를 만들었을 때 윤리적인 문제를 피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십 년간 사랑을 받아 현재도 인기를 끌고 있는 심즈라는 게임 시리즈는 마치 이 영화처럼 가상의 세계에 접속하여 어느 한 인간의 일생을 플레이하는데 자신의 취향으로 다른 인물들을 편집하거나 현실에서는 시도조차 하지 못할 행동을 하며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모습은 작품의 메시지인 윤리와 더불어 다시 한번 이 물음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진짜 우리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매우 정교한 그들이 자신을 실제로 살아있다고 여긴다면 그들 사이에서 그저 게임을 플레이하는 우리가 나를 연기하는 것인지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는 고민해보아야 할 부분이다.
영화의 마지막 연출을 통해 이 또한 각본 속에서 그 상황을 모른 채 내가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고 만족하는 우리를 향해 진실을 보기 위해서는 깨어나야 한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1999년 개봉된 이 작품이 상상하였던 2024년의 모습은 당시보다 더 밝고 희망찬 미래였으나 현실의 우리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느꼈을 때는 반성하게 되었으며 가상세계와 윤리, 인간의 심리 등 복합적이고 현대사회에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메시지를 던졌던 영화 13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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