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되잖아?
밝고 활기찬 회사원 모모세 나루미는 어쩌다 보니 이직한 새로운 회사에 출근 첫날부터 지각 위기에 놓였다. 어떠한 비밀 때문에 이직을 선택했던 그녀는 이번 회사에서는 자신의 비밀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며 급한 마음을 뒤로한 채 전철에 오른다. 회사에 도착한 나루미는 같이 일하게 될 동료 코야나기 하나코의 안내를 받아 이야기하는 도중 소꿉친구 니후지 히로타카와 그의 동료 카바쿠라 타로를 만났다. 자신의 비밀을 소꿉친구가 괜히 내뱉을까 긴장된 나루미는 서둘러서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그녀의 등 뒤로 “이번 여름 코미케 참가해?”라는 질문은 비밀을 간직하기 위해 이사와 이직까지 결심한 그녀의 발목을 다시 한번 잡아끌었다. 그렇다. 그녀는 흔히 이야기하는 오타쿠였다.
퇴근 후 히로타카와 술집으로 간 나루미는 그와 함께 휴대용 게임기로 게임을 즐기며 아찔했던 순간이 잘 넘어갔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히로타카는 나루미가 오타쿠라는 사실을 숨기는 줄 몰랐다며 사과했고 나루미는 언젠가 자신이 오타쿠인 것이 회사에 알려지게 된다면 게임 폐인인 히로타카의 정체도 까발릴 것이라고 말하는데 오타쿠는 인기가 없으므로 숨기는 편이 좋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히로타카는 딱히 숨기지 않는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덕밍아웃을 계기로 이전 남자친구에게 차였다며 나루미는 이번에는 절대로 들키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하는데 그런 그녀를 보고 히로타카는 오타쿠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소꿉친구이자 오타쿠 친구인 히로타카는 거의 동지와도 같은 소중한 사이이기에 연인이 되기에는 그가 아까운 존재였던 나루미는 잠시 히로타카를 지켜보고는 역시 자신의 이상형은 아니라며 히로타카와 술자리를 마무리하였다.
일을 배우며 여러모로 허술한 나루미와 반대로 동료인 코야나기는 빈틈없이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나루미는 코야나기를 찾아가 전날 히로타카가 했던 질문에 반응했던 그녀에게서 자신과 같은 오타쿠의 분위기를 느꼈던 것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의 의구심을 확인하기 위해 다가가는데 코야나기의 휴대전화에 찍혀있는 익숙한 코스프레 사진에 놀랐고 코스튬 플레이어인 코야나기와 좋아하는 캐릭터의 2차 창작 만화를 그리는 나루미는 서로에게 동지의식을 느낀다. 그날 저녁도 나루미와 함께 한잔하러 간 히로타카는 종업원에게 나루미의 남자친구라는 오해를 받았고 이 간단하고도 작은 오해에서 서로가 연인이라면 어떨지 생각하다가 두 명의 오타쿠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익숙한 서로에게서 사랑을 느껴보기로 한다. 그리고 오타쿠라는 사실을 들켰던 카바쿠라 역시 만화를 좋아하며 오타쿠임을 숨기는 점과 코야나기와 연인관계라는 사실에서 오타쿠 동료로서 또 각자의 친구와 연인으로서 4명은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기도 때로는 공유하기도 한다.
픽션
오프닝 곡 픽션은 애니메이션, 소설, 만화, 영화, 게임 등을 통틀어 각 매체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라는 소재를 노래한다. 전날까지 보았던 소설이나 여러 미디어의 내용, 게임의 클리어 과정 등 이야기는 각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체를 관통하는 유일한 소재이므로 이 이야기가 얼마나 완성도가 있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평가는 천차만별임을 우리는 익숙하게 알고 있다.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상상의 세계, 주변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 가정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세상과 수많은 사건은 우리의 흥미를 끌어 이야기라는 롤러코스터에 올라타 작가가 구상한 파도와 같은 여러 굴곡의 레일을 경험하게 만든다. 요즈음에는 어떤 소재가 인기를 끌면 비슷한 유형이나 이야기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와서 ‘양산형’ 작품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는데 노래를 듣고 난 후에는 이러한 작품들도 나름대로 등장인물들의 유일한 이야기라는 점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도 인생의 유일한 스토리와 그 안에 담긴 희로애락을 즐겨야 하지 않을까? 오타쿠 동료인 네 사람이 서로가 좋아하는 분야를 즐기는 모습과 사회인의 모습으로 돌아와 잘 차려입은 뒤 걷는 모습의 대비가 이러한 자신의 스토리를 힘차게 걸어가자는 메시지처럼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너의 옆자리
엔딩 곡 ‘너의 옆자리’는 소꿉친구에서 연인이 된 특히나 서로의 취향으로 인해 타협하듯이 결정한 히로타카와 나루미의 사이를 평범한 연인과는 조금 다르다고 표현한다. 친구로 지내던 시간부터 시곗바늘이 멈춰 있다는 가사에는 과거 히로타카에게 다가와 친구가 되어주었던 나루미의 따스한 모습이 투영되어 그 순간부터 함께 시간을 보냈으나 그 당시의 마음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를 품었다. 친구에서 연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똑같은 거리에서 서로를 대하는 두 사람과 같은 모습은 수많은 청춘 로맨스에서 단골 소재로도 이용되었으나 원래 가까웠던 사람이 연인이 되었을 때 상대의 진지한 모습에 당황하기도 편하게 느껴졌던 그 사람의 옆자리가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는 것을 이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 가사에 담은 마음은 처음은 어색할 때도 허둥지둥하며 긴장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씩 보폭을 맞추어 한 걸음씩 상대를 알아가 다시금 ‘너’의 옆자리가 편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었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이 애니메이션은 어른이자 사회인이 되어 소꿉친구를 회사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이 서로의 오타쿠적인 취향을 위해 타협하듯이 연인이 된 이야기를 담았다. 회사원들의 비밀스러운 사내 연애나 학생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으나 오타쿠라고 하는 특별한 집단을 소재로 한 사랑 이야기가 이 애니메이션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예전보다는 훨씬 그들에 대한 허들이 낮아졌으나 지금도 여전히 오타쿠라는 단어에 불편함을 느끼고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며 상대적으로 마니아라는 단어는 이에 비해 긍정적인 분위기로 대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무엇인가 광적으로 집착하며 자신의 취향에 대한 반론을 일절 인정하지 않거나 특이 취향에 빠져 남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과 다르게 우리 주위에는 여러 종류의 오타쿠들이 있는데 만화를 좋아하거나 운동을 좋아하는 오타쿠가 있을 수 있으며 차에 관심이 있거나 영화나 음악을 좋아하는 오타쿠도 있다. 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4명의 등장인물 역시 각자가 좋아하는 분야가 극명하게 나뉘어있으며 본인의 취미에 돈과 노력을 쏟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그저 좋아하는 것을 있는 힘껏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타쿠로서의 정도가 심하던지 약하던지 또는 남들에게 자신의 취향을 알리는 것에 대수롭지 않던지 조금은 부끄럽다고 느끼던지 그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신경을 쓰거나 편견을 가질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의 취향이 나와 달라 불편함을 느꼈을 때 그 사람이 나와 이웃,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라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나와는 조금 다른 관점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면 된다고 이 애니메이션을 보며 생각하였다. 주인공인 나루미가 여태 만났던 남자친구들은 모두 그녀의 오타쿠적 취향에 기겁하며 잘못된 편견을 가졌고 상처를 주었기에 그녀는 이번에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였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았을 때 다른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거나 그 사람의 흥미를 끌었던 가치를 부정하거나 하찮게 여기지 않았는지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의 다양성만큼 그들 각각의 인생과 가치관의 다양성만큼 모두의 취향은 각기 다르며 나와는 다른 취향을 상대가 공유하고자 하였을 때 등장인물들이 보여주었던 대화를 통해 본인의 관점과 퍼스널 스페이스를 명확히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무조건적인 방어보다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더불어 괴롭지 않은 수준이라면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도 하는 도전적인 자세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미 가까운 사이였거나 새로운 관계를 통해 알게 된 사이이거나 상대가 누구인가도 중요하지만 사랑은 누구에게나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오타쿠에게 사랑은 어려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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