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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ㆍ애니 감상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영웅. 글래디에이터 감상문

by 망상바드 2023. 10. 28.

영화 글래디에이터 포스터

 

전투 노예 검투사가 되어버린 로마 제국의 대장군

강한 국력과 그 근간이 되는 용맹한 군인을 앞세워 내부는 평화롭게 외부로는 거침없이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던 로마 제국은 마침내 게르마니아 전투를 앞두었고 그 중심에는 마커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신임과 부하들의 충성을 한 몸에 받았던 제국의 대장군 막시무스가 있었다. 황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막중한 임무를 완수하여 전투에서 값진 승리를 만들어낸 그는 언젠가 자신의 주인이 허락한다면 고향 땅과 가족에게 돌아가 한가로운 여생을 보내기를 바랐으나 황제는 조금 더 그가 제국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 잘못된 생각을 하는 자들이 힘과 권력을 갈취하는 것을 막아주길 소망하는 듯 충직한 자신의 신하를 바라본다.

 

한 편 왕세자인 코모두스는 한발 늦게 현장에 도착하여 권력의 정점이자 아버지인 황제가 자신보다 막시무스를 가까이 두는 것을 지켜보고는 막시무스를 인정하면서도 그에게 향해있는 권력의 옷자락을 시기하며 불타는 야망을 조용히 숨겼다. 전투의 승리를 치하하기 위해 막시무스를 따로 불러 독대하는 황제는 로마 제국이 영광을 더욱 키우기 위해선 초기 로마처럼 공화정의 부활이 필요하다고 자신의 충복에게 그의 속마음을 흘렸으며 권력의 때가 묻지 않은 막시무스가 정치가를 견제하는 중립적인 역할을 맡아주길 부탁한다. 전투가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였던 막시무스는 황제의 제안에 즉시 답할 수 없었으므로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곧 자신이 신뢰받는다는 감사와 군신 관계를 넘어 아들처럼 여기는 황제의 유대감을 통해 자신에게 내려진 숙명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날 밤 코모두스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권력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조바심과 야욕에 눈이 멀어 천륜을 저버리고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뒤 제위를 찬탈하였다. 막시무스는 당장 지난밤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던 황제가 갑작스럽게 운명했다는 소식에 코모두스가 무엇인가 잘못된 선택을 내렸음을 직감하며 자신에게 내려진 마지막 과업을 실행할 것을 결심한다. 코모두스는 그런 그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손을 내밀어 이제 황제가 될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을 명하지만 막시무스가 자신의 진정한 주인은 그가 아니라는 듯 그저 자리를 떠나버리자 이에 분개하여 반역의 죄를 물어 그를 사형시킬 것을 지시한다.

 

죽을 위기에 놓인 막시무스는 다시 가족을 만나겠다는 결심 하나로 도망친 뒤 힘겹게 살아남아 고향 땅에 도착하였으나 도착한 집은 이미 코모두스가 보낸 자들에 의해 불타 폐허로 변했고 가족은 끔찍한 짓을 당한 뒤 범죄자처럼 내걸려있었다. 울분을 삼킨 채 가족을 매장하고 힘이 다해 쓰러져 죽음의 문턱에 놓인 그를 지나가던 노예상인이 거두어 간신히 살아남았고 막시무스는 이후 검투사를 이용해 돈을 버는 프록시모에게 노예로 팔려 검투사로 살아가게 된다. 검투사로서 연이은 승리를 거두며 막시무스는 어느새 검투사 무리에서 대장 격으로 여겨져 그들의 존중을 받게 되었고 프록시모는 새로이 황제가 된 코모두스가 군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 콜로세움에서 피에 젖은 살육을 계속한다는 소식을 듣고 막시무스를 이용해 벌어들일 막대한 돈을 꿈꾸며 검투사들을 데리고 콜로세움에 갈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콜로세움으로 향하는 막시무스는 대장군에서 노예가 되어버린 자신에게 내려진 마지막 책무를 다하기 위해 검을 들고 얼굴을 가린 채 검투사로서 입장한다.

 

 

글래디에이터 감상문 썸네일

 

영화에서 막시무스는 중요한 싸움이 있기 전 항상 흙을 한 손에 쥐고 잠시 기도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생존 혹은 죽음뿐인 그의 삶에서 안정감은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일군 고향 땅, 사랑하는 가족, 충성을 바친 제국을 포함해 생명의 근간인 흙에서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바란 퇴역 후의 농사와 따스한 가족의 품도, 군인으로서 헌신하며 넓혔던 영토나 적들과 싸워 이기는 과정에서 잃게 된 동료들도 모두 흙에서 시작하여 흙으로 돌아갔다. 영화에 나오는 ‘우리도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라는 대사도 이러한 생명과 자연의 순환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막시무스가 고난을 이겨낸 것처럼 아무리 어려운 환경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씩씩하게 견디고 다시 일어선 인류에 대한 격려와 찬사라고 느껴졌다.

 

광야

막시무스가 겪은 여러 고난이나 역경 그리고 이를 뛰어넘어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완수하는 과정은 이육사 시인의 광야를 떠올리게 한다. 자유와 독립, 민족을 걱정하며 시를 쓰고 고초를 겪었던 그처럼 막시무스도 바른말과 행동으로 고난의 시간을 견뎌야 했으며 로마와 시민들에 대한 걱정, 잘못된 자가 올라선 제위를 올바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한 독립, 검투사로서 혹은 숙명으로부터 바라는 자유와 같은 그의 인생이 연상되었다.

 

다시 광야라는 시로 돌아오면 앞서 말한 흙의 의미와도 이어지는데 광야는 생명의 근간이다. 그 생명의 근간에서 로마가 세워졌고 번영을 이룩하며 성장하였으나 코모두스나 썩어버린 원로원의 정치인과 같은 인물이 나타나는 내리막길의 전조와 시대의 흐름 그 자체가 한 인간으로서는 막기 어려운 광야의 산맥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러한 시대의 흐름도 광야를 범하지는 못했다는 구절이 철저하게 중립적인 위치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힘의 균형이 깨지는 것을 막으려 하였던 막시무스의 충성심을 대변하였고 눈이 내리는 고난의 시기를 지나 마침내 콜로세움에 들어서 승리를 쟁취하는 순간의 막시무스를 보았을 때는 그야말로 광야에서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백마를 타고 오는 이상적인 초인이 그와 같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영웅의 존재

영화를 보며 ‘영웅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혹자는 태생부터 다른 이들과 다른 존재이며 비범한 능력을 지니는 것이 영웅의 조건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아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여러 해석을 통해 그들이 바라는 영웅상을 제시하였겠지만 나름대로 고민하며 스스로 내린 영웅에 대한 결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시대의 흐름을 이끄는 존재’이고 영화에서 가장 영웅이라는 존재에 가까우며 이 결론에 부합하는 인물이 바로 막시무스였다.

 

물론 대장군이었던 순간의 막시무스도 영웅이라고 불릴 수 있겠으나 그의 마침표까지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위대한 업적을 쌓고 국력을 강하게 유지하는 장군, 영토 확장에 큰 공로를 세우며 신뢰받는 군인,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철두철미하게 지휘하는 지략가, 내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까지 이 모든 모습은 로마 제국의 누구나 그를 영웅이라고 여길 요소이지만 조금 시선을 돌려 제국의 상황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는 다른 요소들보다 중요한 한 가지가 떠오른다. 바로 당시의 제국은 영화에 등장하는 마커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마지막으로 풍요로웠던 오현제 시기가 끝나며 제국의 전성기가 쇠락의 길로 향하는 과도기였고 흔들리는 시대의 흐름을 바꿀 존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황제가 느끼고 있었던 것처럼 비록 번영하는 듯하였던 제국이 점차 내리막으로 향하는 이 고민은 본인의 사후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를 눈에 보이듯 뻔한 일이었기에 황제는 자신을 대신하여 위기에 놓인 제국을 되살리기 위해 시대를 바꿀 인물로 그동안 지켜보았던 막시무스를 택하였다. 그리고 막시무스는 그 기대에 부응하듯 자신이 보여주는 모든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시대의 흐름을 바꾸었으며 누구도 감당하지 못했을 과업을 완수하여 영웅이 되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무인, 군인이라는 힘을 가진 사람이 권력자들에게 희생되기도 혹은 자신이 무력을 통해 잘못된 권력자의 길로 향하기도 했으며 그 결말은 대부분 좋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막시무스를 지켜볼 때 철저하게 중립적인 위치에서 헌신했던 그가 임무를 다할 때까지 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모습이 이상적인 영웅처럼 느껴져 인상적이었던 글래디에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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