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한다. 재능의 원석들아
전국 대회에 다가가기 위해 한 발자국 남은 고교 축구선수 이사기 요이치는 현 대회에서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오자 자신보다 팀을 위해 노 마크인 동료에게 패스했고 이 선택은 동료의 실수로 최악의 결과를 가져와 패배의 쓴맛을 경험한다. 지역 예선도 통과하지 못한 그저 그런 축구부는 기회를 살리지도 승리에 대한 갈망도 부족했으며 이사기가 느낀 가장 큰 문제점은 ‘너희는 나에게는 자랑스러운 최고의 팀이다’라는 수식어와 잘 싸웠다는 말로 포장하여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전통적인 일본의 축구였다. 그리고 그런 팀에서 이름 없는 2학년 공격수인 자신은 문득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어 동경의 대상이자 세계 최고의 공격수 노엘 노아를 더욱 먼 꿈처럼 느끼게 하였다.
어릴 때부터 간직했던 월드컵에서 일본 대표 공격수로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자신의 꿈은 이번 패배로 더욱 손에 닿기 어려운 곳으로 멀어졌고 이사기는 만약 귀중한 찬스 상황에서 패스를 택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에 따라 슛을 하는 승부를 걸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를 생각한다. 분한 마음을 홀로 삭이고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일본 축구 연합에서 온 편지가 하나 있었고 그 내용은 자신이 강화지정 선수로 뽑혔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자신이 뽑힌 것인지 그리고 그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 채 이사기는 편지의 장소를 찾아가 문을 열고 들어가 이미 모여있는 무리를 보며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꼈다. 한 곳에 모여있는 이들은 고교 축구선수로 그들의 포지션 모두 공격수라는 사실에 의아해하는 순간 한 명의 남자가 “축하한다. 재능의 원석들아.”라는 말과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자신의 독단과 편견에 의해 이들 18세 이하 스트라이커 300명을 뽑았다고 말하며 자신은 일본의 월드컵 우승을 위해 특별히 고용된 에고 진파치라고 소개한다.
이어서 말을 계속하는 에고는 일본이 우승하기 위해서는 오직 혁명적인 스트라이커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고 간단하게 말하면 이곳에 모인 300명 가운데 그 혁명적인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만들어내기 위한 실험을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실험을 시작할 특수 시설 블루 록에서 선수들은 공동생활과 특수한 훈련을 받으며 지금까지의 축구관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는 그의 확신은 재능의 원석들을 긴장시켰지만 이어서 그는 자신의 혹독한 실험에서 살아남아 299명을 밟고 일어선 단 한 명은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을 손에 쥘 것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일부 선수들은 전국 대회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 자신의 팀을 버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실험과 특수한 시설에서 생활하라고 말하는 그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에 동조하는 무리가 생기려는 찰나 에고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축구 후진국에서 그렇다고 프로 선수도 아닌 고등학생 수준으로 최고가 되는 것이 중요하냐는 질문으로 소란을 일순간 잠재운다.
“남을 배려하는 국민성의 산물인 일본 축구의 조직력은 제일이다.” 이 말이 다시 해석하면 그것을 제외하면 명백하게 세계 수준에서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에고는 지금껏 그들이 들어왔던 축구를 부정하는데 팀을 위한 스포츠,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며 서로가 힘을 모아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등이 이 나라의 팀을 이따위로 만들어버린 족쇄라는 듯 가차 없이 독설을 날리고 축구는 결국 상대보다 더 많은 득점을 해야만 하는 스포츠라고 설명한다. 지금껏 해온 소꿉놀이에 만족한다면 자리를 떠나라고 으름장을 놓는 에고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 모두 팀이라는 개념보다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를 더욱 우선시하였던 에고이스트들이었으며 일본 축구가 부족한 점이 바로 그런 세계 최고의 에고이스트가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지금껏 쌓아온 실적도 없는 그가 구상하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였으나 오직 자신만이 주인공이 되기 위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패스보다는 슛을 선택할 스트라이커만이 블루 록에 들어오라는 그의 말은 이사기가 겪었던 자신의 상황을 떠올리게 해 자신도 모르게 이사기의 발을 움직여 세계에서 가장 축구의 열기가 강한 곳 블루 록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만든다.
그리고 시작된 블루 록에서의 생활은 그 출발부터 가혹했다. 300명 가운데 살아남은 상위 5명은 일본 국가대표 공격수가 되고 살아남지 못하고 탈락한 순간 평생 일본 국가대표가 될 권리를 잃게 되는 외줄 타기는 말 그대로 인생을 걸고 에고 진파치가 앞서 그토록 역설했던 자신만의 에고를 찾아가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축구에서의 다른 포지션은 육성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지만 스트라이커라는 존재만은 다르다. 축구의 열기가 가장 뜨거운 그 현장에서 스트라이커는 갑작스럽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 에고 진파치의 주장에 이사기 요이치는 다른 이들에 비해 특별한 강점이 없다고 느꼈던 자신이 그러한 스트라이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에고이스트가 되어간다.
에고이스트
에고 진파치가 꾸준하게 언급하는 에고는 단순한 자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블루 록의 선수 대부분은 특별한 자신만의 강점을 알고 있으며 또래에서도 해당 선수라면 바로 그 강점을 떠올릴 만큼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각 팀의 에이스들이었다. 하지만 에고 진파치가 그들을 부를 때 재능의 원석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들의 에고는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에고란 무엇일까? 단순한 자아, 인격적인 성장은 에고라고 부를 수 없으며 블루 록에서 통칭하는 에고란 그곳에서 살아남는 단 한 명의 스트라이커를 위한 길 다시 말하면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의미한다.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되기 위해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득점을 만들어내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이끌어 압도적인 점수를 따내는 사람, 나를 위해 팀을 이용하고 상대를 이용하여 그들을 득점의 발판으로 삼는 존재가 블루 록의 에고이스트인 것이다. 조금 전 이야기한 재능의 원석이라는 말 역시 감각적으로 혹은 우연히 그러한 상황을 경험했던 선수들이 다듬어지고 성장하여 자신의 에고를 확립한다면 유사한 상황에서 계획적이고 계속된 점수를 확실하게 뽑아낼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블루 록
블루는 냉정함과 열정을 동시에 보여주는데 ‘냉정함과 열정이라는 모순되는 듯한 단어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수 있지만 먼저 블루 록에서의 냉정함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득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멘탈리티와 이를 파악할 수 있는 상황판단능력을 대표한다. 자신의 강점과 이를 동반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주위의 모든 것을 이용하는 냉정함이야말로 에고 진파치가 말하는 에고이스트이며 그 가운데에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꿈을 짓밟는 비정함도 포함된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여 도저히 이길 수단이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을 때는 이 냉정함이 좌절과 포기로 성장하는 상황도 존재하며 인생이 걸린 경쟁에서 자신이 실패하는 좌절을 블루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열정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득점을 위해 움직이는 스트라이커로서의 집념을 말한다. 경기 종료 직전 득점 기회에서 동료의 실수에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을 더 움직여 흐지부지 사라질 목표를 자신이 쟁취하는 것이야말로 블루 록에서 말하는 에고이스트의 행동이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눈에서 푸른 열정을 불태우는 순간이야말로 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가장 좋은 무대로 바뀐다. 보통 불과 열정을 붉은색의 따스한 에너지로 표현하는 것에 비하여 실제로 촛불을 보면 그 주위의 푸른색의 불꽃이 더 온도가 높고 큰 에너지를 발한다는 것을 우리는 실험으로 관측할 수 있다. 이사기 요이치가 주인공으로서 다른 스트라이커들과는 다르게 이 크고 푸른 에너지를 폭발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며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에 옮기는 장면은 작품에서 핵심으로 작용하여 ‘머리는 차갑게 마음은 뜨겁게’라는 문구가 절로 생각났고 성장한 그가 다른 누구보다 진정한 에고이스트가 될 것이라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다음으로 말할 록은 선수들 각자에게 주어진 혹은 짊어진 제한이나 어두움을 의미하기도 그저 간단하게 감옥과도 같이 축구만을 위해 존재하는 감옥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든 선수에게 각기 랭킹이 주어져 그 등급을 올리기 위해 밑바닥의 감옥에서 절망하는 순간도 등급이 올라가 기뻐하는 순간도 있지만 더 큰 록은 그들 스스로가 느끼는 마음의 록이다. 빠른 발을 강점으로 삼았으나 큰 수술을 받아 달리는 것이 두려워진 선수, 자신과 같은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동료들 때문에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의 친구와 축구를 즐기게 된 선수, 부모님의 불화와 자신에게 주어진 과도한 기대에 예전처럼 즐길 수 없게 되어버린 선수 등 이들에게 걸려버린 록은 자신 스스로는 해제하기에 두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록이 항상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선수들은 자신이 한계라고 느꼈던 상황에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새로이 자신의 무기로 삼으며 발전하는데 이 모습은 흔히 게임에서 성장한 캐릭터가 능력 부족으로 사용하지 못했던 기술을 해금하는 것과 같다. 블루 록에서의 생활과 자신만의 에고를 정립하고 성장하여 당당히 마주할 때 자신에게 걸려있던 락을 해제하는 것 재능의 원석에서 에고이스트로 성장하는 그 과정 자체가 록이었다.
전진성
현대 축구에서 전진성이라는 단어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를 잡았다. 전진성이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팀이 득점하고 공격을 계속하기 위한 성질로 이 성질을 가진 선수가 팀을 조율하고 감독의 지시를 수행하며 때로는 상황에 따라 자신의 임의로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여줄 때 그 경기를 제압하고 승리를 거머쥐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 전진성을 보여주는 선수들이 바로 에고 진파치가 말하는 에고이스트를 의미했으며 스트라이커 300명을 선발한 것은 막무가내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동네 축구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고 어떠한 위치에서도 득점이라는 목표를 위한 움직임을 가질 선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정해진 포지션에서 자리를 지켜 소위 말하는 득점기계와 같은 전문 공격수들이 동료들이 만들어준 좋은 상황에 결과를 만들어냈다면 현대 축구에서는 주어진 역할은 당연하고 누구나 득점을 위해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유기적으로 순간순간 동료와 역할을 바꾸기도 혹은 자리를 바꾸기도 하면서 더 많은 공격으로 더 많은 득점을 노리는 현상을 지켜볼 수 있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현대 축구의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누구나 득점을 기록할 수 있는 환경, 이러한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선수들이 경기장 내부에서 살아 숨 쉬며 팀 전체가 마치 한 생물처럼 승리라는 결과를 위해 움직이도록 경기장을 세부적인 구획으로 나누고 선수들이 가진 전진성을 명확한 패턴으로 정립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 동시에 축구에는 크랙이라는 역할로 불리는 선수들이 있다. 이 선수들은 상황을 뒤바꾸고 팀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상대의 전술을 흔드는 존재들이며 그들 대부분은 높은 확률로 이 전진성이라는 성질을 자신의 무대로 삼아 그들이 가진 강점을 통해 변화를 꾀한다.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네덜란드의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로번은 블루 록의 선수처럼 특정하지만 아주 확실한 무기 하나로 세계적인 공격수가 되었다. 알고도 못 막는다는 그의 패턴은 빠른 발을 이용한 돌파와 간결한 볼 컨트롤로 수비를 따돌린 후 왼발 감아 차기였고 이 매크로와 같은 그의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은 수많은 득점과 함께 그를 영광의 자리에 올린 그 자신만의 에고였다.
그리고 이사기 요이치의 등번호가 그와 같은 11번이라는 점은 작품 전체에서 그리고 일본 축구를 뒤바꿀 크랙이 바로 그라는 것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이사기 요이치는 크랙으로서 극적인 수비를 통해 팀을 위기에서 되살리기도 하였고 동료를 이용하여 공격의 판도를 뒤흔들기도 하였으며 그로 인해서 동료의 행동이 팀의 변화를 이끌었던 경험도 때로는 그 자신이 짜릿한 득점을 경험하기도 했다. 초기의 설정처럼 정체된 일본의 새로운 목표 설정과 월드컵이라는 도전을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할 필요성이 있고 그 새로운 시작을 위해 필요한 역할이 이 전진성을 가진 크랙이라는 것은 더 강조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최근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은 금메달을 차지하며 아시안 게임에서 3번 연속으로 우승을 달성하였는데 우승이라는 기쁨에도 경기에서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는 조금 전 말한 전진성이 아쉽다는 평가의 글들이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었고 일부 글들을 읽으며 동시에 나 역시도 그들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지는 않았나 반성하기도 했다. 언제부터였는지 국민들은 월드컵에서 16강 이상의 성적을 당연하게 기대하며 때로는 선수들을 때로는 감독과 코치들을 비난한다. 2002년의 4강과 2012년 올림픽의 동메달은 우리의 기준을 높여버렸고 해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에게 과도한 기대를 품은 채 우리의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세계 수준에 비교하면 우리나라 유소년 체계의 현실은 아직 부족하며 우리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목표설정과 함께 다시 시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과 이번 대회에서 활약한 대표팀 선수들 역시 재능의 원석들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블루 록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강점을 명확하게 펼치는 그들처럼 대한민국 재능의 원석들이 자신만의 강점을 살린 에고이스트들이 되어 한국 축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길 바라며 감상했던 블루 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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