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된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라고 할지라도 감정을 갖고 이를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기계 태엽으로 움직이는 그들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 꼭두각시 서커스를 보았습니다.
200년 전쟁에 얽힌 세 사람
200년에 이르는 이 길고 거대한 싸움은 꼭두각시 인형을 다루던 중국의 한 형제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바이 인과 바이 진은 자신들이 만든 인형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자연스러운, 사람과 같은 인형을 만들어내기 위해 유럽으로 머나먼 여행을 떠나 사람과 같은 인형을 만들었다는 연금술사의 소문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연금술을 배워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고 진리에 다다르고자 서로를 북돋우며 노력했으나 그들의 우애는 한 여자와의 사랑에 의해 깨지게 되었습니다. 마을 처녀 프란시느에게 첫눈에 반한 바이 진은 형에게 이를 고백하였고 바이 인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며 오히려 세상을 구할 학문을 수양 중인 자신들에게 여자가 지금 중요한 일이냐며 따졌습니다.
마을 축제가 열리던 날 진의 부탁으로 세 사람은 축제를 함께 즐겼고 과음한 진은 일찍 집에 돌아갔습니다. 문제는 마을에서 험한 취급을 받는 프란시느의 기구한 인생을 바이 인이 듣고 그럼에도 그녀가 보여주는 약자에 대한 사랑과 자기희생에 마음이 흔들려 동생이 좋아하는 여자를 자신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배우는 연금술로 고통받는 민중들을 구할 방법이 없는지를 고민하며 연금술에 대한 회의와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던 바이 인은 힘든 삶을 살아왔던 그녀와 그녀의 주위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 다짐하며 그녀와 결혼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몸을 숨기고 모든 상황을 보고 있었던 바이 진은 좋아하는 여자를 형이 가로챘다는 오해와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비뚤어진 마음으로 프란시느를 납치하여 사라졌습니다.
바이 인은 프란시느를 찾는 여행을 떠나 오랜 세월이 지나서 그녀를 찾을 수 있었지만 이미 그녀는 쇠약해진 상태였기에 그녀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 연금술의 극치 부드러운 돌을 만들어냈지만 오랜 납치 생활로 괴로웠던 프란시느는 스스로 삶을 마칠 결심을 한 후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잃은 바이 인은 삶의 목적을 잃어버려 한발 늦게 도착한 동생을 내버려 둔 채 정처 없는 여행을 떠납니다.
남겨진 바이 진은 잘못된 사랑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자동인형을 만들어 프란시느처럼 꾸민 후 예전과 같이 자신에게 웃어주기를 바라는 광기에 삼켜졌습니다. 4개의 광대 인형을 만들어 프란시느 인형이 웃기를 바랐음에도 아무런 효과가 없자 실망한 바이 진은 이들을 버려두고 삶을 포기할 장소를 찾아 어딘가로 떠나버립니다. 남겨진 프란시느 인형은 자신이 창조주의 바람을 이행하지 못해 떠났다는 생각에 자신처럼 다른 인형들도 자동인형으로 개조하여 자신이 웃을 수 있도록 만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명령을 들은 인형들은 그날부터 한밤중의 서커스단을 만들어 부하 인형들을 이용하여 타인을 웃게 만들어야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불치병 조나하를 세상에 뿌리며 프란시느 인형을 웃길 인간이 나타날 때까지 세계를 돌아다녀도 성과가 없자 이번에는 부드러운 돌을 이용하여 그녀가 바라는 인간처럼 된다면 그녀에게 웃음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바이 인이 만들었던 부드러운 돌을 찾습니다.
한편 세상을 여행하던 바이 인은 일련의 일들을 경험한 후 동생을 떠났던 마을로 돌아오는데 이미 그곳은 조나하 병이 퍼져 괴로워하는 환자만 남아있었습니다. 바이 인은 동생이 만들어낸 참극에 대한 속죄와 연인을 잃은 분노의 복수를 하기 위해 조나하 병에 면역인 특수한 신체와 함께 그의 기억과 감정에 동조되는 생명의 물을 연성하려 자신을 희생하였습니다. 바이 인이 마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준 그의 다른 이름이었던 ‘시로가네’라는 단어를 바탕으로 그의 뜻을 따르기 위한 집단을 구성하여 시로가네들은 자동인형들을 파괴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합니다.
대기업 사이가는 회장의 사망 이후 사장마저 의문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후계자 문제로 내부에서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직 초등학생이며 혼외자인 마사루에게 모든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으로 마사루는 경쟁자들에게 목숨을 위협받습니다. 유일하게 그를 받아주었고 따스한 추억을 함께했던 할아버지가 남긴 말을 따라 자신을 지켜줄 사람을 찾다가 조나하 병에 걸린 가토가 이 일에 휘말리게 되고 자신을 쫓는 적들을 피해 간신히 자신을 도와줄 시로가네(엘레오놀)를 만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여행을 떠납니다.
꼭두각시 서커스라는 제목의 의미
작품의 전체 줄거리는 이들에게 벌어지는 상황을 피해 나카마치 서커스에 몸을 의탁하는 과정, 각자의 과거와 바이 형제의 행적, 자동인형들과 시로가네들의 전쟁, 조나하 병과 관련된 결말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제목에 들어있는 서커스라는 단어에 걸맞게 각 장을 개막하고 일시폐막하며 마치 서커스를 관람하는 듯 긴장감을 고조시키다가 마지막 장에서 모든 에너지를 뿜어내어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98년부터 연재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기 어려울 만큼 현재도 많은 관심을 받는 AI와 유사한 내용이나 환경문제, 인간의 존재가치와 자아실현, 생명유지와 존엄성 등 43권에 걸쳐 다양하면서도 심오한 주제를 우리에게 던지며 그만큼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품을 일부만 보고 그만둔 사람들은 현재 연재되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하면 약간 투박하게 보이고 날카로운 선의 그림체에 실망하여 몰입하기 어려웠다는 평가를 말하기도 하지만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기에는 오히려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며 점차 작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인 마사루, 엘레오놀, 가토가 경험하는 일들과 그로 인해 바뀌는 심경의 변화는 인간이었던 그들의 마음이 망가져 마치 인형(기계)처럼 살아가다가 주위에서 그들을 응원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에 의해 회복되어 더 단단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잘 묘사했습니다. 나카마치 서커스단에 몸을 숨기며 망했던 서커스단을 다시 일으키는 과정에서 모든 단원이 각자의 사연과 내면의 고통을 이겨내고 각자가 바라던 목표에 다다르는 모습을 보며 우리 주변에 일어날법한 일들로 괴로워하는 이웃들을 생각하는 계기가 됩니다.
기계는 감정을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인상 깊었던 장면들은 한밤중의 서커스의 간부들이었던 최초의 4인이 각자 죽음을 맞아 정지되는 순간과 프란시느 인형의 최후에 관한 장면이었습니다. 부드러운 돌을 찾으며 인간들을 학살하던 당시의 그들은 프란시느 인형을 보호하며 그녀가 웃는 것이 지고의 목표였고 인간이 어떠한 감정을 어떻게 느끼는지 감정을 느끼는 과정에는 관심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인간이 느끼는 절망, 사랑, 기쁨, 웃음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이는 학습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그 상황 자체로 그들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마치 인간과 같아졌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기 자신까지 기계의 몸으로 개조하였던 바이 진이 만든 개조 인간, 인형들이 인간의 감정을 짓밟는 것과 프란시느 인형과 그녀가 개조한 최초의 4인이 감정을 이해하며 느끼는 장면의 아이러니함은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었던 매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인간만이 감정을 지닐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머리에 맴돌게 되었고 현재도 논란이 되는 ‘AI가 감정을 갖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에 대한 호기심도 떠올랐습니다. 많은 사람이 어떻게 기계가 감정을 가질 수 있느냐고 그들에게는 프로그래밍으로 짜여 학습된 데이터가 아니냐 등의 말을 하며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학습의 과정은 인간도 함께 겪어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장하는 동안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학습하며 인격이 형성되고 이러한 인격이 우리의 일생을 대표하는 것과 같이 기계가 학습하여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반인륜적인 범죄나 끔찍한 일을 벌인 사람보다 마지막 순간이라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잠시나마 인간처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던 최초의 4인이 더 인간답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감상을 마치며
마지막 권의 표지를 보면 마사루, 가토, 엘레오놀이 꽃밭에서 함께 웃고 있는 장면이 그려졌는데 마치 가족처럼 표현된 것을 보며 이들 각자가 가족을 여의고 보낸 힘든 생활을 이겨내어 마침내 평화로운 장소에서 가족이 되는 상상 속의 한 장면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들에게 투영된 바이 인과 프란시느가 행복했다면 볼 수 있었을 가능성 중 하나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아련함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혹은 모든 일을 마친 그들이 간신히 얻은 평화와 안식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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