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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문

단테의 신곡과 인류. 댄 브라운 인페르노 감상문

by 망상바드 2023. 3. 8.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 수를 조절하려는 흑막의 계획을 단테의 신곡을 통해 파헤쳐 막으려는 내용의 인페르노 감상문입니다.

 

댄 브라운 인페르노 2권 표지

 

80억 인류 → 40억 인류

소설 다비치 코드로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 댄 브라운이 이번에는 종교보다 단테라고 하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단테의 신곡이라는 문학 작품은 주인공인 단테가 지옥에서 천국으로 향하는 여정을 서술한 이야기이다. 소설과 영화에서는 지옥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여러 죄인을 처벌하는 지옥의 모습과 분위기를 적절하게 연출하여 암울한 느낌을 준다.

 

영화로도 우리에게 알려진 인페르노는 시작부터 보는 이에게 긴장감을 주는데 한 남자가 그를 쫓는 험악한 무리를 피해 도망치다가 막다른 길에 몰리게 되고 종탑의 꼭대기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목숨을 버리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거대한 음모의 서막을 알린다. 이렇게 시작하는 이 작품은 두 개의 큰 질문을 품고 있다. 인류의 절반을 죽도록 만드는 버튼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나에게 그 버튼이 있다면 나는 과연 그 버튼을 누를 것인가? 그리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가 바로 그것이다.

 

결론을 말하면 벡터 바이러스를 개발한 버트런드 조브리스트는 인류가 발전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지구를 오염시켜 왔고 지구는 오염될 때마다 흑사병과 같은 질병이나 지진과 같은 재해에 해당하는 자정작용을 일으켜 이를 회복하고 유지했다는 주장을 한다. 따라서 그 자신을 인류의 절반을 죽게 만들어 지구를 지킬 선구적인 존재로 생각하여 지금까지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바이러스를 개발하였다.

 

감염된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차이가 없으나 유전적인 변화를 겪게 되고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몸이 되는 것이 이 바이러스의 무서운 점이었다. 전 세계의 인류를 절반 수준으로 만들려던 버트런드는 인류와 지구를 사랑했지만 그 수단에 대하여 극단적으로 행동했다. 그렇다면 과연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일까?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자신의 인생을 뒤바꿀 기회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러 선택지가 존재하고 그 사이에서 고뇌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서 우리는 선택을 하고 성취에 기뻐하기도, 후회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

과연 인류의 절반을 줄이기 위해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그리고 인류가 파멸을 피하려고 스스로 수를 줄이는 것은 합리적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읽으면 소설의 막바지에는 버트런드를 도와 바이러스가 퍼지게 하였던 시에나가 다시 돌아와 WHO에 협력하여 백신 개발에 도움을 주는 장면에서 작가가 이 의문에 대신 답을 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목적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하더라도 수단이 정당하지 않다면 바른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적인 사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여러 종교와 사상들 그리고 그 신도들은 자신들의 이념을 퍼뜨리고 강화하기 위해 약자들을 탄압하고 다른 이념을 가진 이들을 박해하였다. 초기에 그들의 목적은 이상향에 가까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으나 그 수단이 변질되어 목적 또한 빛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그들이 세상을 갉아먹는 암적인 존재로 변모했다는 것을 우리는 배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단테라는 작가의 작품인 신곡에 담긴 숨은 뜻을 풀어가는 소설이 아니라 조금 더 심오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감히 누가 인류의 수를 조절하기 위해 타인을 죽일 권리가 있다는 것일까?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들이 모여 하나의 단체로 성장했다는 것이 결코 소설 속의 이야기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아서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위험한 수단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줄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댄 브라운 인페르노 감상문 썸네일

 

현재의 생각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자격이 없다.’, ‘누구도 타인의 생명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하여 신과 같아지려는 인간의 욕심은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와 같은 생각을 계속하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며 의학도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으나 아직 인체에는 많은 비밀이 남아있다.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이 현재의 문제를 치료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어도 그것이 일으킬 미래의 영향은 알 수 없어 이를 과신한 인류가 파멸을 맞는 내용이 대부분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콘텐츠였다. 결과에 과신하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파멸을 막기 위한 첫 단계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나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켜야 한다면 그 목적은 잘못된 목표일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받은 것 같다. 정당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오늘도 고뇌하며 올바른 선택지를 찾는 이들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것은 나 또한 그들 중 일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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