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 주위를 둘러싼 차별과 사회에서 보여지는 모순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그린 북 감상문.
떠버리 토니와 돈 셜리
수많은 희생과 변화를 위한 외침에도 1962년 뉴욕엔 인종차별이 아직 존재하고 있었고 클럽의 가드로 일하던 떠버리 토니 역시 이러한 풍조에 남들처럼 자신과 다른 유색 인종에 대한 반감으로 그들을 경시하였다.
클럽이 임시로 휴업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그는 가장으로서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운전기사를 찾는다는 셜리 박사를 만나기 위해 그가 머무르는 카네기 홀에 들어선다. 면접을 기다리던 토니는 마침내 셜리를 만나는데 그는 자신이 무시하던 유색 인종이었다.
박사라는 것을 듣고 단순히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을 위해 운전만 할 것이라고 여겼던 그였지만 셜리는 자신을 음악가라고 소개하며 여러 지역을 돌아다녀야 하는 콘서트를 위해 사람을 고용하기로 했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 지역은 대부분 미국의 남부였으며 남북전쟁과 인권운동 이후에도 몇몇 이들에게 뿌리 깊게 박혀 있었던 차별에 셜리는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것에 거부감이 드는지 물어보고 토니는 자신의 아내가 유색인에게 차별과 편견 없이 대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문제없다는 대답을 한다.
단순히 운전기사의 역할이 아닌 무려 8주 동안이나 계속되는 일정과 그 일정을 관리할 능력이 있는 사람, 다시 말하면 개인 비서가 필요하다는 셜리의 말에 토니는 자신과 맞지 않는 일이라며 자리를 일어난다. 자신은 집사가 아니라며 운전만 할 것이라는 통보와 함께 나가려 하였으나 여러 사람을 통해 그의 정보를 알고 있었던 셜리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면접을 마친다.
다음 날 아침 셜리는 토니의 집에 전화를 걸어 그의 아내와 이야기하며 그를 고용하게 되었다. 운전기사가 된 토니는 음반회사 직원으로부터 50%의 선금과 유색인이 남부여행을 할 때 머무를 수 있는 곳이 담겨있는 그린 북이라는 책을 받는다.
그리고 남부의 여러 곳에서 연주회를 하며 무대 밖에서 유색인이 겪는 차별과 편견을 자신의 눈으로 보게 된 토니가 어느새 그들의 폭력이 부당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음의 차별을 없애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를 넘어 셜리와 친구가 되는 과정이 영화가 보여주는 교훈이다.
어딘들 다를까요? 당신 동네가 있는 뉴욕의 바였다면 달랐을 것 같아요?
셜리를 만나기 전 토니는 유색인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여기는데 더운 날 아내가 유색인 수리 기사들에게 물을 대접하였고 이를 본 토니가 물컵을 버리는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셜리와 일을 하는 것도 좋은 보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지만 그 자신 안에서 인식하는 범죄와 관련된 일은 피하거나 명심해야 할 내용을 메모하는 태도는 그가 인식하고 있는 잘못된 행동의 선을 넘지는 않는다는 분별력을 보여준다.
같은 편의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게 막거나 다른 이들과 함께 식사를 즐기지 못하게 막는 것은 일상적이었으며 마음에 드는 정장을 발견해도 입어 볼 기회도 주지 않는 양복점과 공권력을 앞세워 부당한 폭력을 가하고 인권을 보호해주지 않는 경찰, 술집에서 조롱하고 폭력을 가하는 무리는 토니가 가졌던 인식을 바꾸었다.
그러면서도 연주회를 마치면 많은 이들의 축하 속에서 셜 리가 말하는 ‘당신들의 환대’에 대한 감사와 그린 북에 적혀있는 ‘평화로운 휴가를 위해’라는 문구는 사회의 모순과 잘못된 현실을 깨닫게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울타리만 넘어오지 않는다면 아무런 상관없다는 태도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나의 친구, 나의 이웃을 생각하는 인격의 성장을 경험한다.
셜리는 자신과 함께하는 동안 받을 수 있는 대우와 존중을 걷어찬 토니에게 안타깝다는 듯 이야기하고 때로는 무고한 자신이 피해를 받는 상황을 설명하며 무력은 아무것도 정당화될 수 없고 품위를 지켜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을 때 비로소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말할 때 토니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그를 존중하게 된다.
베토벤과 쇼팽은 아무나 칠 수 있지만 당신의 음악은 당신만이 연주할 수 있어요.
클럽에서 일하며 나름대로 대중음악에 관심이 있던 토니가 셜리와 음악에 대한 가치관을 이야기할 때는 조금 더 음악 자체를 즐기기를 바란다. 정숙하고 진중한 자리에서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 모든 주목을 받아 연주하는 것뿐 아니라 가벼운 공간에서 많은 이들과 떠들썩하고 자유롭게 흐름에 맞추어 연주하는 것도 음악이라는 것이다. 토니는 셜 리가 그저 정해진 소리를 내는 악기가 아닌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연주자가 되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셜리 역시 토니에게 영향을 받아 자유롭게 행동하는 토니를 보며 그동안 딱딱하고 고지식하게 행동한 건 자신이 스스로를 얽매어서가 아닐까?라는 듯 그의 행동을 따라서 하며 자유를 느끼기도 하고 유색인들이 모여있는 식당에 함께 들어가 식사를 한 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연주를 하고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주변인
토니에게 자신의 가정사를 말할 때는 여러 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음악인의 일정은 평범한 사람이 맞추기 어려웠고 마치 범죄자과 비슷하다는 말을 하며 가족과 멀어졌다는 이야기와 아내와 헤어지게 된 그가 얼마나 답답하고 고독한 삶을 살아왔는지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주변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차별과 편견에 거짓 웃음으로 자신을 감추고 백인들의 문화에 어울려 그들이 가둔 새장 속에서 그저 연주를 위한 노예였고 연주를 끝내고 나면 무대 밖에서 다시 자신을 찾아오는 피부색의 편견과 차별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하였다.
어느 곳에서도 그를 진정한 인격적 개체로 존중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고 그의 음악은 인정해 주었으나 그의 피부색은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었으며 백인의 문화에도 흑인의 문화에도 섞이지 못하는 주변인이 되어버렸다.
진정한 로드 매니저
함께 여행을 시작하고 많은 시간이 지나며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기도 문제에 빠진 상대를 걱정하기도 하게 되었다. 마지막 공연장도 그의 음악만 바랄 뿐 피부색에 대한 차별로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담당자에게 화가 난 토니가 계약을 어기고 셜리와 공연장을 나와버릴 때 느껴지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항상 지시하던 셜 리가 토니의 의견을 물어보며 그의 뜻대로 결정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그들이 보낸 시간을 넘어 함께 한 인연이 깊어졌으며 부당한 대우에 자신을 위해 진심으로 화를 내줄 토니 같은 매니저가 아마 초반에 그에게 말했던 개인비서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떠들썩한 토니네 가족의 분위기와 크리스마스에도 쓸쓸하게 혼자 보내야 하는 정적인 공간에서 셜리의 외로움은 그의 고뇌를 더욱 드러나게 하지만 토니와의 유대 관계를 다시 생각하는 셜리의 모습은 더는 외로움만 가득하지는 않았다. 외로움을 느껴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토니의 말은 고독함을 느끼던 셜리에게 다가와 그가 고독할 때 곁에 누군가 있다는 긍정적인 방향의 마음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토니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며 토니를 찾아가 그가 반갑게 맞아주는 파티를 함께 즐길 때 우리도 우리 사회에서 나의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사람은 어디 출신이라더라, 그 사람은 어디에서 일한다더라 등의 차별과 편견은 우리 사회에서 서로를 가로막는 장해물이 되어 인격적인 존중을 하기 못하게 방해한다. 실제로 명망 있는 음악가였던 도널드 셜리와 그의 친구가 되었던 토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인종을 뛰어넘는 우정을 보여주는 그린 북을 보면서 스스로 가지고 있었던 편견과 차별에 대한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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