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대체 누구야?
궁극의 가상 세계 U는 50억 명 이상의 사용자를 돌파해 계속 그 영역을 넓히는 지상 최대의 인터넷 공간으로 누구나 안정된 상태에서 즐길 수 있도록 실행했을 때 사용자의 생체정보를 스캔한 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아바타(분신)인 AS를 자동 생성한다. 가상현실이면서 생체정보와 AS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U는 현실과 다른 또 하나의 현실이며 주체인 AS는 또 하나의 자신이 되어 인생을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과는 달리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이곳에서 많은 사람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이런 자유로운 세상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은 한 명의 AS는 아름답고 화려하게 치장하여 하늘을 나는 고래 위에서 모두를 향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노래에 담아 표현한다. 이 AS의 이름은 벨이며 모두가 인기스타인 그녀의 노래를 공유하고 독특한 매력을 감상하는데 50억 명의 사용자 가운데 가장 인기를 누리는 위치에서 그 자신감을 상징하며 모두가 꿈꾸는 선망의 대상은 그 관심만큼이나 많은 사람에게 한 가지 궁금증을 갖게 한다. “벨의 정체가 뭘까? 그녀는 도대체 누구야?”
스즈는 원래 음악을 좋아하던 소녀였으며 그녀의 어머니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음악적 영감을 나누던 파트너였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함께 음악을 즐기고 일상을 보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머니는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날 불어난 강물에 갇혀버린 아이를 구한 뒤 돌아오지 못하는 사고를 당했고 사랑하는 자신이 있음에도 위기에 처한 타인을 구하기 위해 행동하였던 선의는 인터넷상에서 누군가에게는 조롱거리로 누군가에게는 스즈 자신을 향한 동정의 시선으로 더럽혀졌다. 게다가 가지 말라고 붙잡은 자신이 아닌 위험 속에서 두려움에 떨었던 타인을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떠난 어머니에게 느꼈던 배신감은 지금껏 함께 행복한 순간만을 노래했던 음악을 부정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현실에서의 거부감은 노래나 음악은커녕 말조차 쉽게 내뱉을 수 없게 만들었으며 어머니의 빈자리는 가족 사이에 커다란 공허를 낳아 화목하고 따스했던 집은 대화마저도 사라진 쓸쓸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점점 지쳐갔던 스즈는 친구인 히로에게 초대받아 U라는 세계에서 또 하나의 인생을 시작할 Bell이라는 AS를 생성한다.
제대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어려웠던 현실과는 다르게 U에서는 목소리도 떨리지 않았고 내려는 소리도 호흡도 안정적이었다. 갑자기 노래하는 벨을 보며 주변의 AS들은 홀린 듯이 걸음을 멈춘 채 노래에 빠져든다. 그녀의 개성적인 음색과 독특한 음악에 날이 선 비난을 하기도 현실에서의 스즈와 같은 벨의 주근깨를 비아냥거리기도 하던 그들은 잠깐 멈칫하다가 이내 가던 걸음을 재촉했지만 한 AS만이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의 목소리와 독특한 음악을 아름답다고 말해주었고 자신감을 잃었던 스즈에게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U의 소개처럼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부정하는 온라인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이 벨을 팔로우하고 그녀의 노래를 기다린다는 사실과 노래 안에 담긴 따스함과 치유를 느끼도록 하였다. 친구인 히로의 프로듀싱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벨은 유명한 인기인이 되자 당연하게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되는 만큼 동시에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없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벨의 정체가 궁금해진 사람들은 과연 그녀가 누구인가를 찾기 시작하며 세상에 알려진 사람들 가운데 벨이 있는지, 자신의 주위에 벨이 노래하고 있었던 건지를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6개월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을 증명한 벨은 그녀와 자신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라이브 콘서트를 시작하려는데 용이라고 불리는 AS가 침입하여 다수의 적에게 쫓기는 상황을 목격한다. 용은 과하다고 생각되는 전투방식과 상대를 망가뜨리는 태도로 악명을 높이고 있었으나 그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번에도 자신을 쫓아 공격하는 적들을 모조리 무찌른 뒤 유유히 사라진다. 벨은 그런 그에게서 어째선지 내면의 괴로움을 느꼈고 현실로 돌아온 스즈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용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렇게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미움을 받는 일을 계속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후 그녀는 용에게 다가가 그가 처한 상황과 현실에서의 상처, 마음의 벽을 감싸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와 자신감 없던 현실을 당당히 마주한다. 현실의 스즈 그리고 U의 인기스타 벨이라는 양쪽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취했던 행동의 의미나 인터넷 세상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영향력을 깨달으며 노래로써 자신이나 용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는 내용이 용과 주근깨 공주의 핵심 줄거리이다.
거짓된 가짜 세계?
이 애니메이션 영화는 그야말로 SNS와 인터넷이라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하라고 학습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구매한 이미지로 거짓된 삶을 치장하는 사람 등을 포함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나의 삶에 슬픔은 일절 없다는 듯 게시글이나 사진, 동영상을 올리며 자랑할 때도 즐거운 순간만을 기억하기 위해 이를 공유할 때도 있는데 작품의 메시지를 생각한다면 ‘행복이란 그런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타인의 행복을 보았을 때는 AS와 같은 아바타 혹은 익명의 자신을 내세워 가면을 쓴 채 다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기도 타인의 평가를 깎아내리기도 하며 과하게 다른 이와 자신의 행복을 비교하기도 때로는 이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눈으로 보는 스크린 뒤에 있는 그 사람의 정체가 궁금하다는 핑계로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선을 넘어 사생활을 침해해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인기인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반드시 자신들이 환멸 할만한 그 뒷면이 있어서 그것을 밝혀내고 말겠다며 누구나 하나쯤은 있을법한 비밀을 캐묻거나 자신의 상처를 감추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어 냉혹하게 그들의 상처를 후비는 일도 있었다.
주근깨
어떤 사람은 외모로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사기도 또 어떤 사람은 뛰어난 운동 수행능력으로 누군가는 음악적 재능의 뛰어남으로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미적 감각이 남들보다 뛰어날 수 있고 누군가는 글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며 누군가는 지식이나 연기력으로 극찬을 받는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사람과 인생만큼 그들 각각의 내면에 주근깨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는 숨기고 싶은 나만이 알고 있는 모습, 겉을 화려하게 치장하여 내면의 상처를 감추는 것은 예전부터 많은 사람이 겪은 정신적인 스트레스였으며 이 주근깨를 결국 마주하지 못한 채 세상과 동떨어져 지친 자신의 몸을 그저 쉬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주근깨가 세상에 알려지는 상황 혹은 타인에게 약점으로 잡힐까 두려워 꽁꽁 감추는 사람들도 늘어갔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인 스즈의 존재는 이 작품을 통해 상당한 의미를 보여주는데 과거에 겪었던 충격적인 사고, 가상의 세계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수많은 환호와 응원, 자신이 상처받을 위기에서도 타인을 보듬어줄 수 있는 용기까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한 사람이 얼마나 멋있고 강한 것인지 그리고 내면의 아픔을 이겨낸 삶에서 주근깨가 더는 콤플렉스가 아닌 개성이자 본인을 상징하는 특징이 될 수 있음을 그녀를 통해 배웠다.
고래
고래는 바다에 살면서도 숨을 쉬어야 하는 포유류이기에 언제까지고 바다에 머물 수만은 없으며 반드시 숨을 쉬기 위해 올라와 물 밖의 공기를 들이마셔야 한다. 이와 비슷하게 정보의 바다라고 불리는 거대한 인터넷의 흐름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흔들리지 않은 채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고래는 이 애니메이션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사용자의 모습이었다. U에 점점 몰입하며 벨이라는 인기인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현실에서 자신의 존재를 흔들리지 않게 지탱하는 스즈 본인과 주변의 영향력이 있었고 어떠한 일에 몰두해 그 과정에서 얻는 기쁨은 중요하지만 그 자체에 매몰되어 현실을 잊는다면 고래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숨쉬기를 잊는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작품은 전달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유명 인기스타들에게는 이렇듯 일상의 환기와 재충전, 추진력이 되어주는 숨쉬기가 수많은 눈초리와 카메라에 의해 제약을 받아왔음을 우리는 수없이 경험했다.
작품에서 U라는 가상의 세계와 AS라는 존재를 보여준 것처럼 현실에서는 몇 년 사이 멀티버스와 메타버스, 버츄얼이 인터넷의 주된 흐름이 되어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콘텐츠와 사업, 사용자가 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연예인들은 ‘부캐’라고 말하는 새로운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는 신선함으로 또 다른 매력을 드러냈고 인터넷 방송인들은 특수한 장비를 활용한 버츄얼이라는 요소로 각자가 활동하는 메타버스라는 인터넷 세상에서 팬들과 더욱 가까워져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며 정서적 교류를 나누기도 했다. 점차 늘어가는 그들의 인기와 뛰어난 능력, 매력 등에 일부 사람들은 작품에서 등장하는 대중들과 마찬가지로 볼 수 있는 이면의 그들을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영화 매트릭스의 중요한 소재였던 ‘빨간 약’에 빗대어 실제 그들의 모습이나 삶, 정체를 추측하며 상처를 주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의 주근깨는 감추면서 다른 사람의 작은 멍에 관심을 가지는 저스틴과 같은 잘못된 정의에 사로잡혀있었는지 모른다. 그들의 사생활도 존중을 받으며 스크린 속 그들과 개인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들 사이에 다른 모습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개별적인 인격체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이 숨쉬기를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이 숨을 쉴 수 없는 환경으로 점차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U는 새로운 자신, 새로운 인생, 새로운 세상이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U를 시작할 때 안내되는 메시지인 ‘새로운 자신, 새로운 인생, 새로운 세상’을 생각한다면 U는 함께 세상을 이루어갈 당신(you)이라는 의미,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며 바꾸어갈 꿈(夢: yume), 세상 그 자체를 나타내는 유니버스(universe) 등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구성원인 대중들이 보여준 의식의 흐름은 누군가에게 칼을 들이밀기도 따뜻한 응원의 글을 전하기도 하는데 감독의 메시지처럼 이 흐름이 선한 영향력을 이끌 것이라는 희망을 가장 잘 보여주었던 장면이 바로 자신의 본모습으로 노래하는 스즈에게 영향을 받은 모두가 떼창과 공감을 통해 각각이 그녀와 같은 내면의 빛을 지니고 있음을 표현하는 부분이었다. 해외의 가수들이 한국을 찾아와 놀라고 자신이 받는 사랑의 무게를 실감하는 순간이 바로 한국인의 떼창을 듣는 순간이라고 어느 영상을 통해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순간 사랑의 무게와 노래를 통한 따스함을 경험하는 사람은 가수뿐 아니라 그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고 함께 감정을 교류하며 내면의 빛이 연결되는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연결은 비단 현실에서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세상인 U에서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작품은 증명했다. 평범한 자신의 모습으로 노래하는 스즈가 지금껏 자신의 상처라고 여겼던 어머니의 결심과 행동을 이해하게 될 때, 왜 전혀 모르는 타인을 위해 벨이라고 하는 노력을 무너뜨리고 현실의 정체를 드러낼 위험에 처하면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으며 무시할 걱정 가운데에도 상처받고 위험에 처한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인가? 이 깨달음은 바로 어머니가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아이를 구하기 위해 강으로 뛰어들었던 그것과 같았다. 사람이 상처받은 다른 사람을 걱정하며 구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에 어떤 이유가 있을까?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이라는 평범하지만 당연한 이 결론이 인간의 본성 가운데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와 속도를 체감할 수 있는 인터넷의 세상에서 문화를 쌓아 올리는 것도 우리이기에 정말 소중한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본래의 모습, 현실의 나를 분명하게 인식하면서도 가상 세계에서의 자신도 또 하나의 다른 자신이라는 그 확신이 있으면 새로운 인생, 새로운 자기 자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나의 주근깨를 마주하는 용기, 인터넷 세상에서 타인에 대한 존중, 정보의 바다에서 거짓 정보에 휩쓸렸던 경험에 대한 반성 등 우리의 현실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용과 주근깨 공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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