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보다 전력이 약하다고 여겨지는 상대에게 확실한 승리를 취하는 것도 있고 평소와 다른 변수로 상대를 당황하게 유도하여 판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상대를 만나더라도 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적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적을 위압하는 힘이 있기에 오래도록 그들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회자가 되는 것이겠지요. 오늘 할 이야기는 이러한 위대한 업적으로 아스널을 이끌어 축구를 예술로 승화시켰던 아르센 벵거 감독의 축구 인생을 돌아보겠습니다.
외국인 감독이 축구의 종주국에서 명장이 되기까지
“제게 축구는 삶의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두려울 때도 있어요. 어떤 것에 인생을 전부 바친다는 것은 꽤 겁이 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분명히 제 인생을 전부 바쳤습니다.”라는 벵거 감독의 말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아스널의 감독으로 부임하고 22년이 된 2018년 5월 6일. 마지막 홈경기를 치르는 벵거 감독을 맞이하는 관중들은 경기장 안팎을 가리지 않고 그를 연호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유일무이한 감독이라고 팬들이 칭송하는 벵거 감독은 프리미어 리그 38경기에서 26승 12무를 기록해 무패 우승을 이루었던 감독이었습니다.
시간은 1996년의 런던으로 돌아가 그가 아스널의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가 누군지 알지 못하는 상황을 회상하며 벵거 감독은 당시 수뇌부들이 상당히 용감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외국인 감독이 축구의 종주국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사례는 없었고 더욱이 그는 영국에 알려진 유명한 선수 출신의 감독도, 감독으로 뛰어난 성과를 보인 경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감독으로 부임한 첫해 96 - 97 시즌의 아스널에서 아직 그는 선수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지역과 팀에 적응하며 실수도 하고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선수들은 아마 뭘 믿고 저 사람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당시의 아스널을 회상하는 벵거 감독은 아스널의 구단 문화가 영국식 문화를 중요하게 여겼고 벵거 감독은 외국인 선수에게도 이러한 영국식의 마음가짐을 강조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면서도 부임한 이후 그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경기장 내부에서 선수들이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힘을 기르도록 조력했고 경기장 밖의 모든 일을 철저하게 통제했는데 아침부터 밤까지 선수들의 모든 식단이나 잘못된 훈련문화를 고쳤던 것이 바로 그러한 일이었습니다. 선수들도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에 따르자 눈에 보이는 성공을 거두는 것을 알았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수들이 그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감독 자신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강조합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선수의 성장이었기에 선수를 보호하고 그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장해물을 해결하였고 자신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시키는 것, 그리고 자신을 찾아온 선수에게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의 눈높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진심으로 대하는 것. 그것이 벵거 감독의 장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공 뒤에는 보이지 않는 악의적인 공격도 있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감독이랍시고 구단의 문화를 뜯어고쳤는데 이게 또 성공을 거두니 이를 시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의 사생활을 폭로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제보로 기자들이 모여 경질이네 복직이네 떠드는 와중에도 당당한 벵거 감독. 다음 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부정적인 시선에도 그는 떳떳한 사람이었습니다.
두 마리의 사자
그는 자신을 자신만의 작은 세상에 틀어박힌 은둔형 인간이라고 표현합니다. 집과 경기장, 훈련장에서 자신의 삶을 희생하여 모든 일정을 경기에 맞추었던 그에겐 오직 축구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선수들에게 엄격한 관리를 했던 것처럼 자신에게는 더욱 엄격했던 그를 막아서는 최대의 적은 당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고 리그를 지배하다시피 하던 강적에게 영국만이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자신만의 축구를 증명하려 했던 벵거 감독입니다.
점점 맨유의 순위를 쫓으며 압박을 가하는 아스널에 언론에서도 이 두 팀과 감독들의 신경전을 대서특필로 내세우며 점차 분위기는 과열되었습니다. 그리고 맞붙은 아스널과 맨유의 99년 4월 14일 FA컵 준결승 경기는 작년에 이어 더블을 노리는 아스널과 트레블을 노리는 맨유의 치열한 승부가 예상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페널티킥을 성공시키지 못해 연장전까지 이어진 승부에서 패배한 아스널. 자신에게 더욱 엄격했던 벵거 감독은 패배를 겪을 때마다 더 나은 선택지와 가능성, 이길 방법을 생각하며 패배의 쓴맛을 삼켰기 때문에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그걸 머리에 심어 두고 싹을 틔울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01-02 시즌 결국 경쟁 상대로 여기던 맨유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아스널은 더블을 달성하였는데 더 높을 열망을 가진 벵거 감독은 이번에는 무패 우승에 대한 목표를 드러냅니다. 모두가 그를 미쳤다고 생각하였고 기회를 잡은 언론이 그를 물어뜯었습니다. 그해는 비록 무패 우승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벵거 감독은 다음 시즌 다시 한번 선수들에게 무패 우승을 선언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03-04 시즌. 승리를 이어가는 아스널을 막아서는 강적 맨유의 홈 올드 트래포드에서 치르는 03년 9월 21일 원정 경기. 이제는 서로를 우승의 라이벌이라고 인정하는 만큼 거친 승부가 예측되는 경기가 시작되었고 아스널 선수 한 명이 퇴장을 당하여 불리한 경기 도중 상대에게 페널티킥이 주어졌습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상대 선수가 실축하며 아스널은 무패 행진을 지킬 수 있었고 이 경기가 선수들의 의욕을 끌어올려 그들을 하나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신적, 육체적인 부담으로 리그를 제외한 큰 경기에서 연이어 패배하며 무너질 위기에 놓인 아스널은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2대 1로 뒤지고 있던 시합을 역전하며 선수들을 다시 하나가 되게 만들었고 마지막 경기도 승리로 마무리하며 리그 무패 우승을 이루게 됩니다.
그의 예술적인 축구에는 낭만이 있었다
“두려움은 우리의 야망에 브레이크를 겁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세요. 대담하게 행동하고 야망을 가지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말도 안 되는 꿈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라고 벵거 감독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축구를 직업적으로 접근한다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았던 그의 주변 환경에서도 벵거 감독이 자신의 말도 안 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선수에서 감독으로, 모나코 FC에서 나고야로, 나고야에서 아스널로 야망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힘든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특별한 순간을 선사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는 벵거 감독의 말을 들으면 그와 비슷하게 항상 생각나는 인물이 있습니다. 농구 감독직을 지냈던 최희암 감독이 선수들에게 “너희들처럼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하는 데에도 대접받는 것은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팬들한테 잘해야 한다.”라며 팬의 중요성에 대해 충고했다는 일화에서 스포츠와 자신들이 팬들에게 받는 사랑에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벵거 감독은 자신을 실용주의적 낭만파라고 말합니다. 축구라는 오락에 빠져있으면서도 승리라는 실용을 위해 움직이는 본질적인 감독의 위치이지만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성장에 대한 야망과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겠다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는 선수 개개인뿐만 아니라 팀 전체의 역량을 높여 이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고 실제로 아스널의 축구가 팬들에게 예술로 다가왔기 때문에 그의 축구가 낭만이 있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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