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 가운데 고위 관료였던 류성룡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징비록 감상문입니다.
임진왜란과 징비록
임진왜란은 임진년이었던 1592년 왜국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내부의 전란을 끝내고 그 힘을 분출하고자 대륙으로의 영토 확장을 목표로 한 조선 침략을 일컫는다. 임진왜란을 통해서 조선은 왜 그렇게 쉽게 무너져 내렸으며 당시 전혀 전쟁 준비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천연의 요새가 전국적으로 여러 곳에 있었음에도 20 여일 만에 한양에 입성하도록 한 것인지 그리고 임금이었던 선조는 그저 명나라의 도움만을 바라며 의주로 피란을 갔던 것인지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은 우의정과 영의정을 지내고 전란 가운데에서도 직언할 수 있었던 유능한 신하 중의 한 명으로 손꼽히는 류성룡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기록물로 평가된다. 전란의 참상과 그 가운데 조선의 관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당시의 상황을 말로 들려주는 듯이 묘사하고 중간중간 본인의 생각도 들어있는 부분에서 함께 생각할 거리를 제시한다.
유능한 장수가 있었음에도 적재적소에 보내지 못하여 연이은 패배로 전사한 경우, 격렬한 항쟁으로 힘겨운 전투를 벌이지만 수적 열세로 패배한 일도 있었다. 잘못된 판단을 하는 지휘관에 의해 수많은 병사가 희생된 사건도 있었고 적의 규모에 놀라 겁을 먹은 병사들이 도망쳐서 패배한 장수도 있었으며 잘못된 지휘체계에 의해 명령 전달에 혼선이 생겨 전멸한 병사들도 있었다.
물론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이 계속된 승리를 거두며 적 수군의 합류를 막았고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값진 승리를 거두며 적의 사기를 꺾었던 성과도 있었지만 역시 아쉬운 것은 전란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준비를 철저하게 하였다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난 일을 경계하여 후환을 경계하다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과 같이 외세의 침입에 대항할 힘을 갖추는 것은 국가를 운영함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이다. 이 책에서도 류성룡은 병사의 절반은 항상 훈련에 임하며 단련시키고 나머지 절반은 나라의 토지를 경작하게 하면서 식량과 군의 전투력 강화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성벽의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튼튼하면서 자연적으로 중요한 곳에 축조되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적은 병사가 지키고 있더라도 정말 튼튼한 성안에서 지키는 것에 힘을 쓴다면 많은 적과 대적하더라도 쉽게 함락당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지옥과 같은 전란을 보내며 조선은 피폐해졌다. 국토의 2/3는 폐허가 되었고 굶어 죽는 사람이 절반에 가까웠으며 왜적을 몰아내기 위해 파병을 온 명나라 장군들은 싸울 의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조선사람들이 말하기를 왜적은 얼레빗 같고 명나라 군사는 참빗 같다고 말한다는데 사실입니까?”라는 것이었다. 왜적은 침략자이지만 얼레빗처럼 드문드문 약탈하고 빠르게 마을을 떠나지만 명나라 군사는 도와주러 온 아군임에도 참빗처럼 지나가는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수탈하며 느릿느릿 행동한다는 내용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의 삶이 간접적으로 나타났다.
류성룡은 우리에게 ‘내가 이 책을 만든 이유는 지난 일을 다시 돌아보고 잘못된 일을 경계해서 앞으로는 이러한 환란이 없도록 조심하라.’라는 말을 한다. 징비록을 통해서 류성룡이 자신의 나라인 조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임금이었던 선조에게 얼마나 충성을 다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명나라 장군에게 간청하는 때에는 자신의 자존심도 생각하지 않고 조선만을 생각하는 충성스러운 신하의 모습에서 그런 사람이 남아있었기에 조선이 몰락하지 않고 견딜 수 있었으리라고 느껴졌다.
현재의 생각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들, 위정자들의 실수에 피해를 받는 것은 힘없는 민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군주는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 나라의 기반인 백성을 버리고 도주하였고 양쪽에서 수탈당하며 고통받은 백성들이 오히려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수습하는 모습은 바뀌지 않았다.
징비록은 항상 우리에게 평화는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고 경고하고 있다. 과거에 있었던 잘못은 고치고 바로잡아야 반복되지 않는 것이다. 사고가 벌어지기 전에 사고를 막기 위한 준비, 현재 상황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있어야만 죄가 없는 사람, 힘이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 본인이 속한 무리의 이익보다 나라와 민중들을 생각했던 류성룡의 모습에서 위정자가 가져야 할 바른 자세를 볼 수 있었다.
'독서감상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조는 편집이다! 에디톨로지 감상문 (0) | 2023.02.22 |
---|---|
오늘 뭐 먹지? 노하라 히로시의 점심 감상문 (0) | 2023.02.16 |
두 명의 장인 요리사. 미스터 초밥왕, 미스터 요리왕 감상문 (0) | 2023.02.08 |
가면과 같은 인간의 이중성. 히가시노 게이고 가면산장 살인사건 감상문 (0) | 2023.02.06 |
1960년대의 어두운 일상. 무진기행 감상문 (0) | 2023.01.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