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의 어두운 일상과 소시민을 보여주는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 감상문.
1960년대의 어두운 일상
처음 김승옥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서울 1964년 겨울이라는 단편을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때는 고등학생으로 그저 시험과 관련된 내용을 암기하면서 작품 자체에 대한 진지한 자세가 아니었고 그저 지식으로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고 무진기행을 볼 때는 읽는 자세가 바뀌게 되었다.
서울 1964년 겨울이라는 소설은 개인주의가 팽배하여 옆에 있는 방에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져도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게 될 것이 두려워 자신을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고 그 사람을 버리고 여관을 떠나는 개인을 보여준다. 당시의 사회상을 직접 보고 겪은 것은 아니지만 소설을 통해 그리고 겨울이라는 배경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타인과 관계없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피처
책의 제목인 무진기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단편 소설은 무진으로 떠나 겪는 일을 느낀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돈 많은 집안에 여자와 재혼하여 회사의 전무가 되기 전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고향인 무진으로 향한다. 그에게 무진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도피처이다. 그에게 힘든 일이 생기거나 생각을 정리해야 할 일이 생기면 그곳으로 돌아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갔다.
보통 기행이라고 하면 여행을 떠난 곳에서 생긴 여행담과 풍경에 대한 감상을 적은 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기행이라는 단어가 기이한 행동을 의미하는 기행(奇行)을 뜻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주인공이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할 때, 고향에서 친구와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 서술하는 말을 본다면 이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서울로 상경하고 싶다고 말하는 음악 선생이나 공무원이 된 친구를 볼 때 ‘나’는 쓸쓸하다고 생각한다. 음악 선생에게 편지를 쓴 후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면서 음악 선생에게 썼던 편지를 다시 읽어 본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편지를 찢어버린다.
친형을 죽이려고 생각하는 동생, 옆집 누나에게 성범죄를 가하려는 일에 아무것도 모르는 척 형과 형의 친구들을 도와주는 주인공을 통해 올바른 자아를 확립해야 하는 시기에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주위의 인물에 의해 그릇된 판단을 하게 되는 어린 ‘나’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책을 골랐을 때 그저 남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들어본 적 있는 책을 고르게 되었는데 읽으면서 점점 다른 울림이 있었다. 1960년대는 한국전쟁이 휩쓴 모든 것이 파괴된 한반도에서 미국의 원조를 받아 회복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였고 박정희 정권에 의해 급속도의 발전을 꾀하면서도 대한민국의 성장이라는 커다란 목표를 위해 개인의 희생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에서 우리는 전형적인 소시민적 근성을 느낄 수 있는데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여 타인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장면과 그러한 행위를 정당화하며 자기 위안을 하는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현재에도 대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개인주의가 만연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인간성이 남아있고 이웃의 정을 느낄 수 있는 몇몇 공간들이 남아있지만 타인의 아픔보다는 ‘나’의 이익이 우선되고 더 높은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경쟁을 하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사회를 비난할 수 없는 이유는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개인이고 개인마다 가치관과 목표가 다르며 그 사람의 이상을 자신의 기준과 다르다고 깎아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서 급속한 발전 뒤에 남아있는 잔인한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은 평범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버티지 못하게 만들었고 견디기 힘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도피처를 찾아 도망치게 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도망치는 것이 전부인 그리고 견디지 못할 상처를 받아 나름대로 회복을 꾀하는 등장인물들을 보고 남의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재의 생각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에서도 그처럼 상처를 받고 괴로운 삶을 살아야만 하는 이들이 흔했던 시기에 더 열악하고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지방에서는 그 괴로움이 어떠했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한다면 오히려 급속도의 성장만을 위해 개인의 존재가 사라지게 만든 것이 오히려 개인주의를 자극한 결과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공존했다.
주인공인 ‘나’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장면에서는 회복의 가능성을 보았다. 잘못된 행동을 해도 이를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무질서하고 병든 사회가 될 것이다. 사회에서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잘못을 인지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나’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고 모든 변화는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회복의 가능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거와 비교하면 대단한 발전을 이룩한 현재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상처에 고통받는 이들과 참상이 벌어지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다. 밝은 면만 있지 않은 사회에서 소시민이 되어버린 지금의 '나'가 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는 무진기행 감상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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