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ㆍ애니 감상문

큰 성과가 아니더라도 계속하고 노력하면 인정을 받는다. 고블린 슬레이어 감상문

by 망상바드 2025. 3. 17.

감상문 한 줄 정리

고블린 몰살에 집착하는 은 등급의 고위 모험가가 살아가는 세상과 그의 모험 이야기인 고블린 슬레이어 감상문.

 

고블린 슬레이어 애니메이션 일러스트

 

고블린은 몰살시켜야 한다.

지모신을 섬기는 여신관은 이제 막 신전에서 나와 넓디넓은 세상의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길드에 도착하여 최하위 등급인 백자 등급 모험가로서 등록을 마친다. 등급에 맞는 의뢰서를 찾아보라고 권유하는 길드 접수원의 말을 듣고 게시판 쪽으로 향하려던 그녀를 멈춰 세운 건 마찬가지로 신입처럼 보이는 한 모험가 파티였다.

 

고블린 퇴치 의뢰를 맡았는데 파티에 성직자가 없어 곤란하다며 마을을 습격한 고블린 무리로 발생한 여러 피해를 수습하여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리더처럼 행동하는 모험가의 요청에 그녀는 고민하였고 걱정스러워하는 목소리로 잠시 후 다른 모험가가 와서 해결할 것이라는 길드 접수원의 대답에도 아직 모험의 두려움을 모르는 것 같은 초보 모험가들은 얼핏 자만심까지도 느껴졌다.

 

이에 신관은 결심을 굳혀 그들에게 합류하는데 자신을 제외하고 근거 없이 자신감 넘치는 파티를 접수원이 걱정스럽다는 듯 쳐다보자 여신관은 괜히 불안함 느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블린 무리의 동굴을 발견한 파티는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데 잠시 돌아가서 충분한 준비를 마치는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여신관의 말에 나머지 초보 모험가들은 걱정도 많다면서 고블린이란 어차피 최약체의 괴물이기에 퇴치마저 자랑할 거리도 못 된다며 그대로 나아간다.

 

부상을 치유할 회복약이나 어두움을 밝힐 횃불도 여유롭게 준비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능력이나 여신관의 성스러운 기적을 과신하자 그녀의 불안함은 점점 커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앞서가던 두 사람보다 뒤처진 채 예민해진 여신관은 문득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말하는데 입구에서부터 곧장 앞으로 나아가던 자신들의 등 뒤에서 들린 이 소리에 의문을 품고 또 다른 동료에게 이를 말하는 그 순간 그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고블린 무리에 포위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분명 고블린이 한 개체였다면 그들만으로 충분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끊임없이 모험가들을 괴롭힌 이 악독한 생명체 앞에서 4명의 파티는 간신히 합류하였음에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채 괴멸될 위기에 놓인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동료가 전투 불가의 상태 혹은 사망한 상황에서 여신관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자리를 피해 도망치며 그저 죄송하다고 되뇌는 것밖에 없었다.

 

언젠가 위업을 칭송받는 용맹한 모험가를 꿈꾸던 초보 모험가 파티는 그렇게 이른 시기에 꺾여버렸고 마침내 고블린이 여신관을 따라잡아 습격하며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 같은 순간 여신관은 저 멀리 횃불 하나가 타오르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다가오며 달려드는 고블린을 무자비하게 처리한 그는 자신의 정체를 물어보는 그녀에게 스스로 고블린 슬레이어라고 소개한다.

 

은 등급의 모험가인 고블린 슬레이어에게 간단하게 응급처치를 받은 뒤 그가 고블린을 몰살하기 위해 나아가겠다고 말하자 여신관도 그를 뒤따르는데 고블린 슬레이어는 투박하지만 증오마저 느껴지는 고블린에 대한 공격적인 무자비함을 보였고 고블린의 소굴을 소탕하는 모든 일이 끝난 뒤가 되어서야 여신관은 모험의 어두운 진실을 깨닫게 된다.

 

초보 모험가의 전멸이나 고블린에게 능욕당한 여성들이 돌아갈 곳 없이 신전으로 향하는 일, 동료를 잃은 모험가가 재기하지 못하고 틀어박히게 되는 등 세상에서는 흔한 일을 지금껏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진실을 알고 나서도 직접 눈으로 본 뒤에도 여신관의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호되게 첫 모험의 경험을 마친 그녀는 자신을 구해준 고블린 슬레이어가 일부 모험가들에게 잡졸 전문이나 괴짜라고 무시나 조롱을 받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접수원이 말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을 수행하는 그를 특별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조언대로 최소한의 몸을 보호할 방어구도 구입한 뒤 오늘도 고블린을 토벌하겠다고 무뚝뚝하게 떠나는 그를 동행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법

고블린 슬레이어가 고블린에 대하여 광기와 같은 집착을 보이게 된 이유는 그의 과거와 관련이 있었다. 자신이 살았던 마을은 고블린의 습격을 받아 무너졌고 하나뿐인 누나는 능욕을 당하다 참혹하게 살해당하였으며 약하고 어렸던 그는 살기 위해 그 모든 과정을 숨어 숨을 죽인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고블린 몰살을 자신의 숙명처럼 삼은 것이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고블린과 연관을 지어 생각하는 그의 행동을 지켜보면 저절로 병적인 집착을 떠올리는 maniac(매니악)이라는 단어를 연상할 수 있다. 약간은 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일본어 오타쿠와 다르게 그의 사고와 행동은 지엽적인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비록 고블린 몰살이라는 큰 틀에 속하지만 나름대로 적의 행동을 유추하며 동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유연하게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블린이라는 하급 몬스터만을 토벌하는 그를 못마땅하게 혹은 업신여기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평범한 이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위 모험가인 은 등급임에도 더 큰 모험의 꿈이나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위업이 아니라 돈도 많이 벌 수 없으며 더럽고 귀찮기만 한 고블린에만 몰두하는 그는 분명 이질적이라고 느껴질 만하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 그리고 항상 해결할 손이 부족한 일을 자원하여 나서는 것은 그 의도가 복수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주사위의 눈에 의하여 누군가의 운명이 정해지는 신들의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와 같은 세계관에서도 그의 존재는 이질적이다. 분명히 은 등급에 올라갔으며 그를 소재로 한 음유시인의 노래도 널리 퍼져 다양한 이명도 붙은 그를 기대하고 처음 본 모험가는 분명하게도 당황할 수밖에 없다. 남루하다고 느껴지는 갑옷과 크지 않은 검, 다양하게 바리바리 준비한 소지품들까지 하지만 외견은 초라하다고 느껴질지언정 그는 언제나 방심하지 않았고 자만심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언제나 이용하려 하였다.

 

백자, 흑요, 철을 넘어 은 등급에 이르기까지 고블린 슬레이어가 걸어온 길은 가시밭길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언제 자신의 모습이 될지 모르는 사체나 포로를 마주하며 체구는 작지만 영악한 마신의 무리가 학습하지 못하도록 때로는 압도적으로 때로는 처절하게 무기를 휘둘렀기에 비범하지 않더라도 차근차근 길드의 인정을 받아 지금의 그가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떠오른 노래가 하나 있었는데 아이돌 그룹 VIVIZ의 ‘MANIAC’이었다. 애증이라는 단어를 노랫말로 풀어놓은 것과 같은 이 곡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놓고 MANIAC이라는 제목을 통해 집착을 강조하였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비록 고블린 몰살의 복수만을 위해 살아왔던 그의 집착이 동료들을 만나고 모험을 떠나며 의도치 않은 또 다른 결과,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대놓고 고블린 슬레이어라는 제목과 그의 이명이 상징하는 어떠한 느낌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였다.

 

VIVIZ의 곡 MANIAC은 처음 발매되었을 당시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그렇게 주목받지 못한 노래로 활동이 끝날 것 같은 곡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한 이 곡은 어느 순간부터 대중들에게 알려지며 날마다 조금씩 그러나 멈추지 않고 사랑을 받아 여러 음악 차트를 역주행하였고 댄스 챌린지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인정까지도 받았는데 이러한 이야기 역시 어떻게 보면 고블린 슬레이어가 걸어온 매일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던 것과 유사하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앞서 말했던 TRPG의 세상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하게 주사위의 눈이 가리키는 운처럼 허망하게 목표가 무너지는 순간도 있고 계획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으며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하여 성과를 얻기도 하는데 이는 각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것과 수동적인 주사위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모든 수단과 노력을 활용하였을 때 타인의 인정이라는 부수적인 보람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느꼈던 ‘고블린 슬레이어’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