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폭력이 아닌 심오한 인간의 5단계의 욕구가 담겨있는 파이트 클럽 감상문.
폭력이라는 일탈
불면증으로 고통받던 ‘나’는 병원에서도 상담을 받았으나 의사는 그에게 건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그에게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고환암 환자들의 모임에 가면 그런 소리를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의 ‘나’는 모임에 참석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나 모임에 참석한 다른 이들이 자신을 품어주며 아픔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고 안식을 얻어 여러 모임에 참석하며 마음의 평안과 함께 얼마 동안은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참석한 모임들에 불쑥 들어와 자신과 같이 아픔이 없음에도 환자 행세를 하며 이곳저곳에서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말라 싱어라는 여자를 보면서 모든 것이 꼬이게 된다. 그 사람의 행동에서 자신의 거짓말이 보이게 되었고 마음의 평화가 사라진 ‘나’는 이전과 같은 불면에 시달리게 되었고 더는 참지 못한 ‘나’는 그녀에게 자신의 안식을 주는 모임을 망치지 말라며 그녀의 정체를 까발리겠다고 말하지만 말라는 대수롭지 않게 내 알 바 아니라고 되받아치며 자리를 떠났다. 이에 ‘나’는 그녀와 참석하는 모임을 나누는 것에 대해 협상을 하기 시작하였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그녀에게 밀려 주도권을 내어주며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나’는 가스 누출로 아파트가 폭발사고에 휘말린 것을 알게 되었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일회용 친구가 되었던 타일러에게 연락을 걸어 술집에서 만나 함께 술을 마시며 ‘나’는 신세를 한탄한다. 그리고 그의 거처에서 신세를 지기 위해 밖으로 나서다 문득 타일러는 ‘나’에게 자신을 힘껏 때리라는 부탁을 한다. 최대한 힘껏 때리라는 믿을 수 없는 소리에 지금껏 남을 때려본 적도 싸움을 경험한 적도 없는 ‘나’는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이어지는 타일러의 주먹에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고 계속해서 주먹을 주고받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허름한 타일러의 집에서 신세를 지면서 매주 토요일 밤 두 사람은 폭력이 주는 희열에 빠져들었고 두 사람으로 시작했던 싸움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늘어갔다.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늘어가자 타일러와 ‘나’는 전용의 공간과 규칙을 만들고 자신들의 그룹을 파이트 클럽이라고 명명하며 폭력을 통한 일탈을 계속한다.
밑바닥의 쾌감
타일러와 ‘나’는 육체적으로는 다 큰 성인이었지만 스스로를 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러한 심리가 폭력에 투영되어 나타나는 파이트 클럽이 열리는 그 공간, 그 시간만이 일탈이 가능한 모든 것이며 밖을 벗어나는 순간 그들은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와 그들의 아지트를 감춘 채 똑같이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도를 넘는 타일러의 만행은 멈추지 않았고 파이트 클럽에서 시작한 무리는 반사회적 집단으로 성장하며 미국 전 지역에 퍼져 경제를 붕괴시키며 모두가 제로 그라운드(밑바닥)에서 시작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영화를 보면 밑바닥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타일러의 위험한 가치관이 녹아있는 대사, 행동 등을 모두 모아서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 단어 ‘밑바닥’인 것이었다. 타일러는 사람들이 광고를 좇아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고 직장에 들어가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는 것을 조롱한다. 딱딱한 격자무늬 거처에 누워있어도 나를 둘러싼 모든 소비재의 노예일 뿐이며 햄스터가 쳇바퀴를 돌리는 것처럼 내가 일정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닌 일정에 나를 맞추는 삶의 어느 부분에 자유가 있냐는 것을 폭력을 통해 표출한다.
후반부의 반전을 알기 전까지는 그저 가지지 못한 사람의 불평,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이들에 대한 질투, 노력하지 않고 즐기기만 하며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이라는 문구 뒤에 숨어 젊음을 소비하는 타일러의 욕심이라고 여겼으나 작품이 진행될수록 ‘나’의 반항적인 자아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며 반전이 더욱 크게 다가와 계속 언급하듯 이들은 육체만 성장한 아이이고 그저 자신이 갖지 못하는 무언가를 떼쓰며 얻을 수 없는 물건을 파괴하는 것에 쾌감을 느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 가끔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장면이나 무엇인가 이질감이 든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데 영화 속에서 타일러가 했다는 필름을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관객이 쉽게 느낄 수 없게 순간 다른 장면을 넣었다는 것이 표현된 것으로 타일러 역시 ‘나’가 바라던 이상적인 남성성을 이어 붙인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며 파괴 후 그저 덧씌우면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안일하고 미성숙한 ‘나’의 태도가 느껴졌다.
매슬로의 5단계 욕구에 근거한 파이트 클럽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구분하여 각각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로 나누었다.
인간의 욕구에 대해 이 영화에 대입하면 처음 ‘나’는 불면에 시달리며 잠이라고 하는 생리적 욕구에 만족하지 못하는 삶에 지쳐 자유를 갈망한다. 그리고 타일러를 만나 이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자 비로소 감추어진 폭력에 대해 벗어나려는 안전의 욕구를 갈망하게 되고 타일러에게 동조되어 밑바닥을 경험한 후 안전의 욕구를 버린 ‘나’는 타일러가 계획하는 거대한 범죄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애정과 소속의 욕구를 원하게 된다. 타일러의 만행을 막으려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의 실체와 자신의 본성을 깨닫게 된 ‘나’는 이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모든 계획의 중심에서 자신이 실현하고 싶었던 공포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몸도 가누지 못하는 어린아이는 자신의 생리적 욕구에 어른들이 반응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칭얼거리고 그 아이가 조금 자라면 그저 어른들의 지시를 따르며 정해진 규율과 작은 사회를 이루는 학교에서 점차 상위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다가 자신이 성장했다고 느꼈을 때는 자유를 좇아 누군가를 상처 입히기도 한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어떠한 조직에 속하면서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그 안에 담긴 가치를 이해하게 되며 마침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궁극의 가치를 찾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남은 생을 쏟아붓는 한 개인이 보여주는 인생의 투쟁이 파이트 클럽이 아닐까? 폭력에는 어떠한 정당성도, 가치도, 타당함도 없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발견한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욕구의 과정만은 다시 생각해 볼 의미가 있다고 느껴지는 파이트 클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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