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극장 터에서 시작되는 소녀의 모험
오래된 옛 극장 터 그곳에 모모라는 아이가 있었다. 모모는 덥수룩한 검은 머리에 머리 색처럼 초롱초롱한 검은 눈을 반짝이며 단정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차림새로 옛 극장 터 무대 아래의 한 방을 집으로 꾸며 살았다. 이웃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모모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 연약해 보이는 소녀를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에 모든 마을 사람들이 그녀의 삶을 도와줄 것을 결정했다.
가난하지만 마음씨가 좋은 마을 사람들과 모모의 관계는 점차 깊어졌다. 모모가 그들에게 도움을 받았듯 모모 역시 그들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고 그녀가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방법은 다른 사람의 말에 진심으로 경청하는 태도 덕분이었다. 경청의 능력은 얼핏 아무런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으나 진정으로 경청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면 그 모습에서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느끼게 되고 자신이 빠진 문제를 다른 방면으로 생각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얻기도 했다. 이렇듯 모모는 자신의 친구들이 속을 터놓고 고백하는 여러 문제를 열심히 들어주었고 이는 남녀노소를 넘어 자연현상의 소리에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자신을 찾아온 친구들의 문제가 해결될 때면 그들의 기쁨에 함께하였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일상적인 비밀'로 다가온다. 모두에게 같은 시간이 주어지지만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찰나가 될 수도 억겁의 고통이 될 수도 있다. 바로 시간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도시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회색의 신사들은 이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존재들이었으며 사람들의 시간을 노리는 거대한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그들은 시간 저축 은행에서 나왔다고 자신들을 소개하며 사람들 사이에 어느새 가까워졌고 그 사람들이 살아온 저마다의 시간을 계산하며 일하는 시간 이외에는 모두 낭비하는 시간으로 치부하였다.
딱딱하고 차가운 그들의 태도와 푸른 연기를 내뿜는 시가로 심리적인 지배를 받아 위축된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흔적과 인간으로서 지닌 존엄성, 이웃에 대한 사랑 등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하였던 추억들을 지우고 부족한 시간을 푸념하기 시작했고 회색 신사들은 이러한 사람들의 흔들리는 심리를 파고들어 분명한 오류가 있는 계산임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도록 유도한 끝에 그들의 뜻대로 시간을 저축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그렇게 사람들은 꼬임에 넘어가 시간을 저축할 것을 약속하고 그들의 존재를 잊게 된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그러한 결론에 도달했다는 착각에 빠져 회색의 신사들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각박한 세상을 스스로 만드는 톱니바퀴가 되어갔다.
그리고 편집증에 걸린 사람처럼 그저 시간을 아끼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그렇게 노력함에도 전혀 시간이 남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며 더욱 시간을 아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악순환에 빠진다. 분명 그들은 시간을 아끼면서 전보다는 부유해졌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점차 궁핍해졌고 아까운 시간 속에서 어떻게든 많은 재미와 휴식을 줄 수 있는 오락을 찾았으며 그렇게 도시는 점차 옛 모습을 잃어 어딜 보아도 획일화된 삭막한 질서의 황무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현상이 되어버린 시간 절약의 피해는 온전히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어른들은 아이를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가졌던 시간을 없애버렸고 사랑을 받을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아이들은 모모와 친구들이 모인 곳까지 찾아온다.
이러한 이상하면서도 알 수 없는 현상에 모모는 어른인 옛 친구들을 찾아갔다. 일부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긍지를 저버리는 상황과 삭막해져서 교도소나 창고처럼 변해버린 건물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며 전과는 다르게 세상이 너무 춥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모모가 옛 친구들을 찾은 후 몇몇은 전처럼 다시 돌아와 모모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나 많은 친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며 차가운 세상 속에서 살아갔다. 그리고 모모의 이러한 행동은 회색 신사들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일이었기에 어린아이인 그녀를 회유하려 찾아가기도 했으나 실수로 자신들의 계획을 발설하였고 점차 모모는 그들에게 눈엣가시가 된다. 이후 시간 도둑들에게 친구들의 시간이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모가 겪는 모험과 회색 신사들과의 대립이 이야기의 주된 내용이다.
경청의 가치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모모가 가진 경청이라는 능력을 대단하게 묘사하고 있고 실제로 그 자신도 그렇게 믿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모모의 능력인 경청에 대해 생각할 때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타인에게 이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 나 자신을 포장하여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 나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방법을 배워왔고 이는 말하기와 발표를 가르치는 웅변 학원이나 토론과 관련된 교육을 통해 그 영역이 넓어져 경쟁이라는 요소가 두드러지고 그 결과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을 ‘내가’ 확보하기 위한 이웃과의 단절로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정작 중요한 사실은 말하기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점이고 이 부분이 경청이라는 축복이 힘을 발휘하는 귀한 순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어떠한 말을 할 때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반응을 함께 나누어 적절한 공감을 표현하면 고민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생각한 어떠한 답에 근접하게 되고 슬픔이 있는 사람은 위안을 얻기도 하며 기쁨은 배가 된다. 모모가 경청했기에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서는 쉽게 느끼지 못하는 귀한 경험을 마을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기에 주변의 사람들이 그녀에게 친절할 수 있었고 그들 사이에 사랑이 함께할 수 있었으며 도시에서처럼 단절되지 않고 소박하지만 따뜻한 공동체가 이어질 수 있었다는 인상적인 부분을 작가는 강조한다.
분명 어렸을 때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 친구들의 말에 집중하던 아이들은 세상이 변하며 점차 회색 신사들처럼 바뀌었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그들이 분명한 오류가 있음에도 다른 사람이 이를 확인하지 못하도록 계속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은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마을 사람들과 모모가 다시금 관계를 회복하고 따스한 그들의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작가는 우리가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여러 회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인재상을 찾아본다면 화합과 경청, 상생 등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지원자를 원하고 과거에는 발전과 성장에 치우쳤다면 이제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함께’가 가져다주는 따스함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회복의 가능성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시의 차갑고 딱딱했던 사람들이 다시 자신의 시간을 회복하고 여유를 되찾은 것처럼 그리고 모모가 자신의 친구들과 따스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그들이 보여주는 회복의 가능성이 바로 경청에서 시작된다면 우리는 이 가치를 분명하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과 시간의 가치
작품에서 시간은 다른 여러 작품에서 시간이나 돈이 상징하는 것처럼 물질문명, 도시화를 보여준다. 정해진 시간, 낭비할 수 없는 여유, 나만을 위한 삶은 동서를 구분하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인색하고 피폐하게 만들었고 물질문명으로 풍족해졌지만 반대로 마음의 빈곤은 커지는 우리의 현실을 나타낸다. 우리 조상들은 분수에 맞는 삶, 여유를 즐기는 삶을 살아가며 그 자체가 주는 행복과 따스함을 이웃과 나누었다. 하지만 발전하고 성장하며 더 나은 가치를 창출하고 안정된 삶을 위해 시간을 아끼면서 마침내 수많은 고통에서 다시 일어선 대한민국은 너무 빠르게 변해버린 탓에 여유를 잊어버렸다. 그 과정에서 노력하고 피땀을 흘려 지금의 우리가 살아갈 현재를 위해 고생하신 분들의 고귀한 삶과 희생에 감사와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실제로도 그러하지만 너무 짧은 시간 동안 겪어야 했던 그 많은 일이 우리에게서 여유를 앗아갔는지 아쉽게 느껴졌다.
모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조력자인 호라 박사는 젊어지기도 또한 다시 나이를 먹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의 변화를 통해 시간의 상대성을 보여준다고 느껴지기도 했고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한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지도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시간의 상대성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싫어하는 일, 괴로운 일을 겪을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모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눈을 반짝이는 호라 박사의 시간은 굉장히 빠르게 흘렀을 것이고 반대로 모모가 위험에 빠지게 되더라도 회색 신사들과 대적하기 위해 그녀에게 모든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전하게 될 때는 반대로 시간이 천천히 흘렀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회색인의 법정에서 그들의 재판관이 아이들의 시간을 아끼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워 마지막으로 공략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바로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창의성을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모모와 어린 친구들이 함께 놀 때 창의력을 발휘하여 날마다 새로운 놀이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지루할 틈이 없었던 것은 바로 아이들의 매일이 꿈과 희망, 새로움이라는 가치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싫어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아이들이 시간이라는 가치를 몰라서 혹은 미래를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아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경험하고 싶은 수많은 진로와 역할이 그들에게 더욱 중요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현재의 행복함을 만끽하기 위해 아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경청과 시간이라는 가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책 모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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