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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ㆍ애니 감상문

남에게 맡기지 않는 나의 결단과 진정한 자유. 진격의 거인 감상문

by 망상바드 2025. 5. 18.

감상문 한 줄 정리

벽 바깥세상의 자유를 꿈꾸던 소년이 거인에 의하여 어머니를 잃고 복수를 다짐하는 이야기인 진격의 거인 감상문.

 

진격의 거인 애니메이션 일러스트

 

이런 거 가축이나 다름없잖아

어느 순간 나타나 인류를 학살하였다는 거인들을 피해 거대한 3중의 벽 안에서 삶을 영위하던 인류는 점차 그 삶에 익숙해졌고 머무르는 삶에 적응하며 100여 년간의 평화 속에서 그들은 점차 거인에 대한 공포를 기억 속에서 잊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845년 갑작스레 나타난 초대형 거인이 굳게 닫혀있던 문을 부수고 벽 바깥의 거인들을 끌어들인 채 사라졌으며 또 다른 거인의 돌진으로 월 마리아의 문마저 돌파당하자 그날 인류는 거인들에게 지배당했던 공포와 벽이라는 새장 속에 갇혀 있던 굴욕을 떠올렸다.

 

그렇게 첫 번째 벽 월 마리아를 포기한 인류의 활동영역은 두 번째 벽 월 로제까지 후퇴하는 위기에 빠지는데 앨런 예거는 당시 현장에 있었던 철없는 소년이었다. 의사인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 어떠한 사정으로 함께 지내게 된 친구 미카사까지 소년은 가족과 보내는 평화로운 삶, 그리고 감사함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고 답답한 벽보다는 또 다른 친구 아르민이 들려주는 벽 바깥세상의 자유에 더욱 목이 말라 있었다.

 

하지만 월 마리아까지 뚫린 그날 아버지는 왕진을 떠난 뒤 행방불명되었고 거인들의 습격으로 어머니마저 눈앞에서 잃는 충격을 경험한 앨런은 간신히 미카사와 몸을 피하며 이 세상에서 단 한 마리도 남김없이 거인을 소탕하겠다는 복수를 다짐한다. 그렇게 복수를 다짐한 그는 벽 바깥의 세상을 조사하고 거인과 맞서 싸우는 유일한 집단이자 줄곧 동경하던 조사병단에 입단하기 위해 훈련병으로 입대하여 미카사, 아르민과 함께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훈련을 거친 뒤 인류의 반격이라는 희망을 꿈꾼다.

 

하지만 그 순간 5년 전의 초대형 거인이 다시 나타나 월 로제 외곽 트로스트 구의 개폐문을 뚫어버리고는 사라졌고 벽외조사를 떠난 조사병단의 부재로 들이닥치는 거인을 막아설 병력은 부족한 상황에서 5년 전 참사의 반복을 막으려 상부는 앨런 및 동기들과 같은 훈련병까지도 전선에 투입한다. 하지만 그동안의 훈련에도 실제로 거인을 마주하는 상황은 녹록지 않았고 부상당한 앨런 역시 거인에게 잡힌 아르민을 구하다가 대신 잡아먹히고 만다.

 

수많은 동료를 잃고 거인에게 유린당하는 잔혹한 세상에서 아르민에게 앨런의 이야기를 듣게 된 미카사까지 평소의 냉정함을 잃어버리며 곤란한 상황에 거인을 마주하는 위기에 빠지지만 등 뒤에서 나타난 의문의 거인이 다른 거인들을 공격하는 등 그녀를 위기에서 구해준 뒤 자리를 떠난다. 그렇게 큰 희생을 치렀음에도 월 로제만은 돌파당하지 않았으나 문제는 자신들을 구한 거인이 쓰러진 뒤 그 목덜미에서 정신을 잃은 앨런이 나타났다는 것을 동료들이 보았다는 사실이었고 그들은 앨런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었다.

 

누구의 편인지 확신할 수 없는 불안을 해소하고자 일부는 앨런을 제거하려 하였으나 목숨을 건 아르민의 설득과 이를 받아들인 픽시스 사령관의 결단으로 앨런과 친구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이후 앨런이 사용하는 거인의 힘을 이용하여 트로스트 구를 되찾으며 인류는 처음으로 거인에게 승리를 얻는다. 이제 많은 이들은 앨런을 두려워하기도 사선을 넘어온 든든한 동료나 친구로도 생각하지만 여전히 거인의 비밀과 어떻게 앨런이 그러한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거를 밝혀내는 것이 숙제로 남았다.

 

이에 앨런은 단편적인 기억에서 아버지가 집 지하실에 모든 비밀을 남겨 놓았다는 말을 떠올리며 자신을 믿는 이들과 함께 월 마리아와 고향인 시간시나 구를 되찾고 지하실에 도달하기 위해 나아가는데 그 과정에서 거인과 운명, 세계를 둘러싼 거대한 비밀을 알게 된다.

 

진격의 거인 감상문 썸네일

 

벽, 거인 그리고 자유

연재되는 긴 기간 동안 수많은 복선과 그 수많은 복선을 적절하게 회수하며 원작을 읽은 독자들 및 다양한 관련 미디어 작품의 시청자들에게도 감동과 여운을 주었던 이 작품은 그 마무리를 지은 현재도 다양한 매체에서 회자되며 아직도 남아있는 암시와 복선은 없는지 찾아내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며 이와 관련된 자기만의 또는 작가의 주관을 더한 해석으로 공감을 받기에 이번에는 작품을 보고 느꼈던 재미와 생각을 정리하는 감상문이 될 것이다.

 

우선 이 작품에서 벽과 거인은 사람의 감정과 욕망을 드러내는 물질적인 혹은 개념적인 피사체였다. 자신을 보호하는 동시에 자유를 억압하는 벽은 일면 자기만의 공간을 의미하는 퍼스널 스페이스로 개인의 존중 및 자율성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접근과 침입을 막는 방어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키는 동시에 바깥으로 내딛는 혹은 자신을 개방하는 용기를 가로막음으로써 정신적, 물질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의 이익과 욕망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벽이 우리 사회에서도 여럿 남아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된다.

 

거인 역시도 그러한 관점에서 각각의 등장인물이 그들을 상대할 때 어떠한 태도로 행동을 결심하는지 바라보면 미지의 존재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을 차치하더라도 거인을 마주할 때 누군가는 복수에 대한 분노나 과거의 기억에 대한 공포, 반성, 속죄, 좌절 등을 누군가는 동료에 대한 믿음과 다음 세대에 대한 희망을 드러내는데 이처럼 등장인물을 통해 자신이 거대한 벽이나 거인이라는 문제 상황이나 위기에 놓였을 때 어떻게 헤쳐왔는지 비교하는 것 역시도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경험적 요소라고 느껴졌다.

 

이 작품에서는 새와 꽃도 각각의 의미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들이 단순히 벽 안팎에 존재하거나 오갈 수 있는 자유의 의미를 넘어서 시련을 극복하는 존재를 암시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였다. 새는 태어나면서 알이라는 자신만의 벽, 시련을 깨고 나와야만 세상에 발을 내딛을 수 있고 그 후에도 일부 종을 제외하면 자신의 날개로 날아가야만 비로소 하늘이라는 자유를 느낄 수 있으며 꽃에 대하여도 땅이라는 억압된 공간에서 싹을 틔우고 해충이나 환경이라는 시련을 이겨낸 후에야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를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지 않은 확대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작품이라도 이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무의식에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이 녹아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그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를 완전하게 배제한 채 온전한 작가의 창작으로만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며 이는 작품을 받아들이는 개개인에게 그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나 해석이 비록 주관적일지라도 어느 정도는 일리 있다는 바를 의미하기도 한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면 이 작품에서 강조하는 여러 가치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신뢰와 반복에 대한 것이었다. 작중 조사병단은 거인과 맞서는 집단으로 비록 벽외조사를 통해 큰 가치나 성과를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거인의 비밀을 조사하고 벽 바깥세상에 대하여 탐구하며 이를 반복하는 긍지를 지닌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동료를 잃고 벽 안쪽의 평화에 빠진 사람들에게 조롱을 듣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고 자신의 동료들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누군가는 한해살이 식물처럼 첫 원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온전한 삶을 살아가지 못할 만큼 망가진 자도 있었고 누군가는 역전의 용사처럼 여러 번의 조사활동에서도 동료를 돕거나 지키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 각 개인이 어떠한 성과를 거두었는지보다 흔들림 없는 신념을 이어가는 매개체가 되었다는 점에 있다. 꽃을 피운 식물이 씨앗을 뿌려 또 다음 꽃을 피우듯이 거인에 맞서 인류의 희망을 이어가겠다는 신념과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가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후대, 후배들에게 전해져 자신들의 염원을 이룰 것이라는 신뢰가 느껴지는 여러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류사 역시 여러 관점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고는 한다. 과거의 일을 답습하며 그 과정에서 잘못된 것을 발견하더라도 일부를 위해 혹은 이익을 위해 넘어가다 큰 사건이나 문제가 발생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분명하게 잘못된 것이 있다고,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사회는 조금씩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의 조사병단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맡아 불합리함과 문제 상황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더 나은 가치를 쟁취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떠한 결단 혹은 결심, 맞서는 상황이 언제나 옳다 혹은 정의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는 각각의 상황에 놓인 인물들을 배치하고 그들의 심리를 묘사하며 때로는 대화를 통해 그들의 결단에 대한 결과를 자신이 마주하도록 이끈다. 작중에서 어떤 등장인물은 후회의 기억은 다음 결단을 망설이게 한다며 그러다 결국 남에게 결단을 떠넘기는 이들에게 경고한다. 옳다고 말할 수 없기에 누구도 알 수 없는 결과에 대하여 미리 짐작하며 미래의 당사자가 되었을 현재의 자신이 결단에 대한 결과를 마주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마치 스스로를 새장 속으로 가둔 것이나 다름없는 것 아닐까?

 

하나의 결단은 다음 결단의 밑거름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며 반복하여 이야기하였듯이 우리의 사회가 그러하였고 이를 구성하는 우리의 삶이 증명하고 있다. 감상문을 적는 시점에서 다가오는 2025년 6월 3일 실시할 예정인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그렇기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어떠한 후보자를 뽑을 것인지는 각 개인의 결단에 달려있고 어떠한 결과를 마주하게 되더라도 나 자신을 스스로 새장 속에 가두지 않기 위해 소중한 권리이자 의무를 포기하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결단을 떠넘기거나 현재에 안주하는 벽 안쪽의 사람들보다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신들의 결단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미래를 쟁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며 나아간 조사병단 인물들이 더 인상적인 이유는 앨런이 그들을 동경하였듯이 우리가 느끼는 삶에도 '나'라는 존재가 마주한 거인과 벽을 넘어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얻고자 하는 내면심리가 작용한 것은 아닌가 느낀 '진격의 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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